어스름한 저녁, 옅은 안개가 도시를 감싸는 날이었다. 몸 속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냉기에 뜨끈한 국물이 간절했다. 문득 떠오른 건, 집 근처에 자리한 오래된 추어탕집, ‘논뚜렁 추어탕’이었다. 그곳은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마치 고향집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게 앞에 도착하니, 익숙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푸근한 인상의 간판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간판을 보고 있자니,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서둘러 차를 세우고 가게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차는 주변 골목에 요령껏 해야 하지만, 복잡한 시간대를 피하면 그리 어렵지 않다. KT인재개발원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 평일 점심시간에는 특히 붐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퇴근 후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식당 안은 든든한 저녁 식사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홀에는 테이블이 빼곡하게 놓여 있었고, 안쪽에는 단체 손님을 위한 방도 마련되어 있었다.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나는 빈 테이블 하나를 찾아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을 펼쳐보니, 추어탕과 매운탕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추어탕과 함께 도리뱅뱅이나 추어전을 시켜 먹는 듯했다. 술 종류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니, 몸보신을 하기에 제격인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추어탕을 주문했다.
“사장님, 추어탕 하나 주세요!”
주문을 마치자마자,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밑반찬이 차려졌다. 마치 내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순식간에 테이블 위는 다채로운 음식들로 가득 찼다. 쟁반 위에 정갈하게 담긴 반찬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잔치상이라도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직접 담근 듯한 깊은 맛이 느껴지는 배추김치였다. 적당히 익어 아삭한 식감과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젓갈의 풍미와 매콤한 양념이 어우러져, 밥 없이 그냥 먹어도 맛있었다.
오이무침은 신선한 오이의 아삭함과 새콤달콤한 양념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입맛을 돋우었다. 두툼하게 썰어낸 오이는 씹을수록 시원한 수분이 터져 나왔다. 풋고추는 매콤하면서도 신선한 향이 입안 가득 퍼져, 느끼함을 잡아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짭짤하면서도 감칠맛 넘치는 조개젓이었다. 톡톡 터지는 조갯살의 식감과 짭짤한 맛은,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자칫 느끼할 수 있는 추어탕의 맛을 깔끔하게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이 외에도, 쌈장과 다진 마늘, 고추 등 다양한 양념이 준비되어 있어, 취향에 따라 추어탕에 넣어 먹을 수 있었다.
밑반찬을 하나씩 맛보는 사이,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추어탕이 뚝배기에 담겨 나왔다. 뽀얀 국물 위에는 송송 썰어 넣은 파와 다진 고추가 듬뿍 올려져 있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습은, 마치 어머니가 끓여주신 따뜻한 밥상을 마주한 듯한 푸근함을 안겨주었다.

국물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으니, 진하고 깊은 맛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미꾸라지를 곱게 갈아 넣어, 걸쭉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느껴졌다. 잡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나는 다진 마늘과 고추를 듬뿍 넣어, 나만의 스타일로 추어탕을 즐겼다. 매콤한 맛이 더해지니, 느끼함은 사라지고 더욱 깊고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밥 한 공기를 통째로 말아, 푹 익은 김치 한 조각을 올려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미꾸라지를 거칠게 갈아 넣어, 씹는 식감을 살린 점도 인상적이었다. 어떤 곳은 너무 곱게 갈아 넣어 마치 죽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곳은 미꾸라지의 형태가 어느 정도 남아 있어, 더욱 풍성한 식감을 즐길 수 있었다.
함께 주문한 도리뱅뱅이도 빼놓을 수 없다.

충청도 금강 유역에서 흔히 맛볼 수 있는 향토 음식인 도리뱅뱅이는, 뱅어(또는 작은 물고기)를 뼈째 둥글게 돌려 담아 양념을 발라 구운 요리다. 철이 아니라 그런지 멸치 정도의 작은 크기라 조금 아쉬웠지만, 매콤달콤한 양념과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밥반찬으로 먹기에 좋았다. 다만, 어떤 사람들은 도리뱅뱅이에서 약간 시큼한 맛이 느껴진다고도 한다. 하지만 내 입맛에는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니,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었다. 계산을 하려고 카운터로 향하니, 사장님께서 환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주셨다.
“맛있게 드셨어요?”
“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덕분에 몸이 따뜻해졌어요.”
“다음에 또 오세요.”
사장님의 따뜻한 인사를 뒤로하고, 가게 문을 나섰다. 차가운 밤공기가 여전히 쌀쌀했지만, 뱃속은 따뜻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돌아오는 길, 문득 자판기 커피 한 잔이 생각났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곳 자판기 커피는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황금 비율을 찾아 개선해주셨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논뚜렁 추어탕’은 대전 서구 괴정동 KT연수원 앞에 위치한, 20년 넘게 한 자리를 지켜온 추어탕 전문점이다. 이곳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닌, 따뜻한 정과 푸근한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변함없는 맛과 친절한 서비스는, 언제나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나는 이곳에서 추어탕을 먹을 때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따뜻한 밥상을 떠올린다. 투박하지만 정성 가득한 음식에는, 할머니의 사랑과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논뚜렁 추어탕’의 음식 또한, 그런 할머니의 손맛을 닮아 있다.
이곳은 대전 시민뿐만 아니라, 외지인들에게도 입소문이 자자한 맛집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추어탕을 맛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다. 그만큼, 이곳의 추어탕은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만약 당신이 몸이 허하거나,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날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논뚜렁 추어탕’을 방문해보길 바란다. 진한 추어탕 한 그릇과 푸근한 인심은, 당신의 지친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줄 것이다.
다만, 이곳은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는 손님들이 몰려,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을 만큼, 훌륭한 맛을 자랑한다.
다음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집으로 향했다. 대전의 맛, ‘논뚜렁 추어탕’은 언제나 그 자리에 변함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