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씨, 대기압이 낮아지면서 세로토닌 분비가 줄고, 자연스레 탄수화물에 대한 갈망이 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런 날엔 무조건 ‘국물’이다. 그것도 밀도 높은 탄수화물, 즉 칼국수 말이다. 목적지는 수유리, 정확히는 한일병원 바로 앞에 위치한, 30년 넘게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노포 수유손칼국수였다. 우이천변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이, 칼국수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주차는 살짝 난관이었다. 10대 정도 수용 가능한 공간이 있었지만, 이미 만차 상태. 다행히 가게 앞에서 친절하게 안내해주시는 분 덕분에, 크게 헤매지 않고 주차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웨이팅도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이미 예상 범위 안. 기다리는 동안, 가게 외관을 스캔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간판, 벽돌 건물이 마치 시간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을 선사했다.

20분 정도 기다렸을까,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테이블은 생각보다 넉넉했다. 메뉴는 단 하나, 바지락칼국수. 고민할 필요 없이 인원수대로 주문했다. 주문과 동시에 조리가 시작되는 시스템인지, 음식이 나오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기다리는 동안, 테이블에 놓인 양념통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진 청양고추와 다대기. 캡사이신 마니아인 나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캡사이신은 TRPV1 수용체를 자극하여 통증과 쾌감을 동시에 유발하는, 일종의 ‘맛있는 고통’을 선사한다.
드디어 칼국수가 등장했다. 뽀얀 국물 위로 흩뿌려진 김 가루와 바지락이 시각적인 즐거움을 더했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면서 후각을 자극했다. 바지락 특유의 시원한 향과 은은한 해조류의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 올렸다. 면발은 기계면처럼 균일한 굵기였다. 예전에는 손칼국수 느낌이 강했다는 리뷰가 있었지만, 지금은 기계면으로 바뀐 듯했다. 살짝 아쉬운 부분이었다. 밀가루 반죽에 알칼리 첨가물을 넣어야 글루텐이 제대로 반응하는데, 이 집 면은 어떨까?

일단 국물부터 맛봤다. 멸치 육수를 베이스로 한 듯, 시원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일품이었다. 바지락에서 우러나온 감칠맛이 더해져, 깊은 풍미를 자랑했다. 글루타메이트 함량이 높아 감칠맛이 극대화된 듯했다. 마치 과학 실험을 하는 기분으로, 국물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실험 결과, 이 집 국물은 완벽했습니다.’
면을 후루룩, 입 안 가득 채웠다. 쫄깃함은 다소 부족했지만, 부드러운 식감이 나쁘지 않았다. 면발 자체는 평범했지만, 국물과의 조화가 훌륭했다. 바지락은 해감이 잘 되어 있어, 씹을 때 모래가 씹히는 불쾌감은 전혀 없었다. 다만, 예전에 비해 바지락 양이 줄었다는 리뷰가 있었는데, 실제로 예전 사진들과 비교해보니, 바지락의 양이 다소 줄어든 듯했다.
테이블 한 켠에 놓인 다진 청양고추를 국물에 투하했다. 캡사이신이 혀의 미뢰를 강렬하게 자극하며,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했다. 매운맛이 더해지니, 칼국수의 풍미가 한층 더 깊어졌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이열치열, 이 맛에 매운 음식을 먹는 것 아니겠는가.

칼국수와 함께 제공되는 겉절이 김치는, 이 집의 숨은 공신이었다. 젓갈 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전라도식 김치였다. 신선한 배추의 아삭함과 매콤한 양념의 조화가 훌륭했다. 칼국수 한 젓가락, 김치 한 조각. 이 조합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했다. 김치의 유산균이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느낌이었다.
어느 정도 칼국수를 비웠을 때, 공기밥을 추가했다.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 김치와 함께 먹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의 완벽한 조화. 뇌는 행복감으로 가득 찼다. 젓갈 맛이 강한 김치는 밥과 함께 먹으니 그 진가를 발휘했다. 흔히 ‘밥도둑’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로 향했다. 가격은 바지락칼국수 9,000원. 솔직히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지만, 맛과 양을 고려하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가격이었다. 게다가 친절한 서비스까지 더해지니, 만족도는 더욱 높아졌다.

가게를 나서, 우이천변을 따라 가볍게 산책했다.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포만감과 함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우이천에는 벚꽃이 만개해,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했다. 꽃놀이와 맛집 탐방, 이보다 더 완벽한 조합이 있을까.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기계면으로 바뀐 점, 예전에 비해 바지락 양이 줄어든 점은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테이블 간 간격이 좁아, 식사할 때 다소 불편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들을 감안하더라도, 수유손칼국수는 충분히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곳이다. 특히, 흐린 날씨에 뜨끈한 국물이 생각날 때, 이곳을 방문하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수유손칼국수는 단순한 칼국수집이 아닌,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이었다. 맛, 서비스, 분위기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다음에도 흐린 날씨에 칼국수가 생각날 때, 주저 없이 이곳을 찾을 것이다. 그땐 부디, 바지락 양이 예전처럼 푸짐해지길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