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새벽, 희뿌연 안개가 채 가시지 않은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화성 남양, 그곳에서 35년 전통을 이어온다는 곰탕 맛집이었다. 새벽잠을 설친 탓인지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뜨끈한 곰탕 한 그릇이면 묵은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질 것 같았다.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따라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생각보다 훨씬 큰 규모의 식당이었다.
널찍한 주차장에는 이미 많은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식당 안은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손님들로 북적였다. 장작불로 끓여낸다는 곰탕의 깊은 맛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지는 순간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곰탕을 주문했다. 메뉴판에는 곰탕 외에도 갈비탕, 도가니탕, 우거지탕 등 다양한 메뉴들이 눈에 띄었다. 갈비찜도 맛있다는 이야기에 잠시 고민했지만, 처음 방문한 곳이니만큼 기본에 충실한 곰탕을 맛보기로 했다.

주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곰탕이 눈 앞에 놓였다. 뽀얀 국물 위에는 송송 썰린 파가 듬뿍 올려져 있었고, 그 아래로는 부드러운 고기가 푸짐하게 숨어 있었다. 놋쇠 그릇에 담겨 나온 곰탕은 보기만 해도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곰탕과 함께 나온 깍두기와 김치는 먹음직스러운 붉은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가장 먼저 국물 한 모금을 맛보았다. 입 안 가득 퍼지는 깊고 진한 육향. 장작불에 오랜 시간 고아낸 육수라는 설명처럼, 깊은 맛이 느껴졌다. 인위적인 조미료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깔끔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마치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속이 시원하게 풀리는 듯한 느낌이랄까.

곰탕 속 고기는 어찌나 부드러운지, 입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질 좋은 수입 고기를 사용했다는 설명이 무색할 정도로, 고기의 잡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큼지막하게 썰린 고기는 씹는 맛도 훌륭했고, 뽀얀 국물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곰탕에는 소면도 약간 들어 있었다. 뜨끈한 국물에 적셔 먹는 소면은 또 다른 별미였다. 곰탕만으로도 충분히 든든했지만, 소면이 더해지니 더욱 풍성한 식감을 즐길 수 있었다. 면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소면의 양이 조금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곰탕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김치였다. 적당히 익은 김치는 아삭한 식감이 살아 있었고, 달짝지근하면서도 매콤한 양념이 입맛을 돋우었다. 곰탕 한 입, 김치 한 입 번갈아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곰탕의 담백함을 김치의 매콤함이 잡아주어, 질릴 틈 없이 계속 먹을 수 있었다. 곰탕집 김치가 맛있으면 그 집은 무조건 맛집이라는 속설이 있는데, 이 집 김치는 그 속설을 제대로 증명해 보였다. 석박지처럼 큼지막하게 썰어낸 깍두기도 시원하고 아삭해서 곰탕과 잘 어울렸다.

밑반찬으로 나온 풋고추는 맵지 않고 아삭해서, 곰탕과 함께 먹기에 좋았다. 쌈장에 살짝 찍어 먹으니, 입 안이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테이블 한 켠에는 송송 썰린 파가 놓여 있어서, 취향에 따라 곰탕에 넣어 먹을 수 있었다. 파를 듬뿍 넣어 먹으니, 향긋한 풍미가 더해져 더욱 맛있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끊임없이 손님들이 들어왔다. 혼자 와서 곰탕을 즐기는 사람, 가족 단위로 외식을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넓은 매장이 꽉 찰 정도였지만, 테이블 간 간격이 넓어 불편함은 없었다. 다만, 손님이 워낙 많다 보니, 직원분들이 다소 바빠 보였다. 특별한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필요한 것은 바로바로 챙겨주셔서 불편함은 없었다.
곰탕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나니,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새벽부터 서둘러 온 보람이 있었다. 35년 전통의 곰탕 맛집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깊고 진한 국물과 푸짐한 고기가 인상적인 곳이었다. 특히, 곰탕과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하는 김치는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다음에는 갈비탕과 매운 갈비찜을 꼭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갈비탕은 한약재 맛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특이한 스타일이라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되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밥맛이 조금 부족했다는 것이다. 갓 지은 밥처럼 윤기가 흐르는 밥이었으면 더욱 만족스러웠을 것 같다. 또한, 가격이 다소 높은 편이라는 점도 아쉬웠다. 곰탕 한 그릇에 만 원이 넘는 가격은, 서민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정성껏 끓여낸 곰탕의 깊은 맛과 푸짐한 양을 생각하면, 가격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가끔씩 몸이 허하거나 따뜻한 국물이 생각날 때, 이곳을 찾아 곰탕 한 그릇으로 몸보신을 하면 좋을 것 같다. 다음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화성 남양, 그곳에서 만난 곰탕은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닌, 지친 하루를 위로해주는 따뜻한 선물이었다. 장작불이 은은하게 타오르는 풍경처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