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곳. 푸른 파도와 드넓은 백사장을 뒤로하고, 나는 좌동재래시장 골목길을 걸었다. 오늘 나의 목적지는 오직 한 곳, 소문으로만 듣던 ‘31cm 해물칼국수’ 본점이다. 좁다란 시장 골목 안, 정겨운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맛있는 냄새가 뒤섞여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붉은 글씨로 쓰인 간판과 그 아래 빼곡하게 붙은 메뉴 사진들이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칼국수집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가게 앞에는 이미 십여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시장통에 자리한 허름한 식당, 세련된 인테리어와는 거리가 멀지만, 오히려 그 소박함이 발길을 끌었다. 기다리는 동안 메뉴를 살펴보니, 해물칼국수와 해물파전이 주력 메뉴인 듯했다. 칼국수 외에도 조개전골과 조개탕이 준비되어 있어, 술 한잔 기울이기에도 좋아 보였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안으로 들어섰다. 테이블 몇 개가 놓인 작은 공간은 손님들로 가득 차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천장에는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 사진과 메뉴판이 빼곡하게 붙어있어, 이곳이 해물 요리 전문점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해물칼국수와 파전을 주문했다. 잠시 후, 테이블 위로 커다란 그릇이 놓였다. 과연, 31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세숫대야만 한 크기였다. 뽀얀 국물 위로 쫄깃해 보이는 면발과 홍합, 가리비, 동죽 등 다양한 조개들이 푸짐하게 담겨 있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한 비주얼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칼국수를 보고 있자니, 기다림의 시간이 순식간에 잊혀졌다. 곧이어 나온 파전 역시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했다. 큼지막한 오징어와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파전은 보기만 해도 바삭함이 느껴졌다.

젓가락을 들고 국물부터 맛보았다. 캬,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시원하면서도 칼칼한 국물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청양고추가 들어가 살짝 매콤하면서도 깔끔한 뒷맛이 일품이었다. 마치 전날 마신 술이 깨끗하게 해장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면발은 쫄깃하고 탱탱했다. 직접 손으로 반죽한 듯, 씹을수록 느껴지는 쫀득함이 좋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조개의 양이었다. 홍합, 가리비, 동죽 등 다양한 조개들이 아낌없이 들어가 있어, 면을 다 먹을 때까지도 조개가 계속 나왔다. 조갯살은 하나하나가 어찌나 실한지, 입안 가득 차는 풍성함에 행복감이 밀려왔다.

파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겉바속촉의 정석이었다. 큼지막하게 썰어 넣은 오징어는 쫄깃했고, 각종 해산물은 풍성한 바다 향을 선사했다. 특히, 파 특유의 향긋함이 해산물의 비린 맛을 잡아주어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다. 파전 한 조각을 간장 소스에 찍어 입에 넣으니, 입안 가득 퍼지는 풍미가 황홀경을 선사했다.

칼국수와 파전을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숨은 공신은 바로 김치였다. 이곳의 김치는 일반 김치와는 달랐다. 겉절이처럼 매콤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특히, 석박지는 적당히 익어 아삭아삭한 식감이 살아있었다. 다만, 배추김치는 꽤 매운 편이었는데,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나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칼국수와 함께 먹으니 매운맛이 중화되어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다. 맵싸한 김치와 시원한 칼국수의 조합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쉴 새 없이 젓가락을 움직이며 칼국수와 파전, 그리고 김치를 번갈아 먹으니, 어느새 배는 불러왔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섰다. 배는 빵빵했지만, 마음은 더욱 풍족해진 기분이었다. 해운대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번 ‘31cm 해물칼국수’를 떠올렸다. 푸짐한 양과 신선한 해산물,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칼칼한 국물 맛. 이 모든 것이 단돈 9,500원이라는 착한 가격에 제공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게다가 파전 역시 13,000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시장 안에 위치한 탓에, 쾌적한 환경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테이블 간 간격도 좁고,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는 웨이팅이 필수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홀서빙 직원의 태도가 다소 퉁명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모든 단점을 덮을 만큼 맛과 양이 훌륭하다는 것이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이다.
해운대 31cm 해물칼국수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한 끼 식사가 아닌, 부산의 정과 맛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시원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칼칼한 칼국수 한 그릇을 비우니, 스트레스는 저 멀리 날아가고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다음에 부산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곳을 다시 찾을 것이다. 그때는 조개전골에 소주 한잔 기울이며, 부산의 밤을 만끽하고 싶다.

해운대에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이라면, 나는 감히 ‘31cm 해물칼국수’를 추천한다. 푸짐한 해물과 시원한 국물, 그리고 정겨운 시장 분위기 속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