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저녁, 용리단길 골목 어귀에 닿았다. 낡은 건물들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붉은빛 네온사인 간판이 나를 홀린 듯 이끌었다. ‘꺼거’, 낯선 이름 석 자가 묘한 설렘을 안겨준다. 평소 웨이팅이 길기로 소문난 곳이지만, 오늘은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캐치테이블 앱을 켜보니, 역시나 대기 등록이 가능하다. 부지런한 발걸음 덕분일까, 오픈 한 시간 전에 도착했음에도 이미 내 앞에 한 팀이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문득 홍콩 여행의 추억이 떠올랐다. 좁은 골목길, 왁자지껄한 사람들, 코를 찌르는 향신료 냄새… 그 모든 것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가 그리워졌다. 꺼거는 어떤 맛과 향으로 나를 홍콩으로 데려가 줄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가게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오픈 시간이 되자, 아담한 공간 안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스며들었다. 나도 드디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11시 반, 실내는 생각보다 아담했지만, 묘하게 정겨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낡은 듯 멋스러운 가구들, 벽에 걸린 홍콩 영화 포스터, 테이블마다 놓인 독특한 식기들… 마치 홍콩 뒷골목의 작은 식당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테이블 수는 열 개 남짓, 4인 테이블이 대부분이라 4명 이상 방문은 다소 어려울 수도 있겠다.
자리에 앉아 QR코드를 스캔하니, 대만 감성이 물씬 풍기는 메뉴판이 눈에 들어왔다. 메뉴 하나하나, 퓨전 중식이라는 콘셉트에 걸맞게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조합이었다. 고민 끝에, 가장 인기 있다는 깨장치킨미엔과 꾸라오르(광동식 탕수육), 그리고 처음 보는 원앙볶음밥을 주문했다. 여기에 시원한 하얼빈 맥주 한 잔을 곁들이기로 했다.

주문 후, 잠시 기다리는 동안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앤티크한 소품들, 빛바랜 사진들, 삐뚤빼뚤한 창문까지, 모든 것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기분이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음식이 나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깨장치킨미엔.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인 윤기 흐르는 닭고기, 아삭해 보이는 오이, 그리고 에그 누들이 조화로운 색감을 뽐냈다. 젓가락으로 면을 휘저으니, 고소한 깨 향이 코를 찔렀다. 한 입 맛보니, 쫄깃한 면발과 바삭한 닭고기의 식감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특히, 깨 소스의 고소함과 짭짤함이 어우러져 젓가락을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닭 껍질은 어찌나 바삭한지, 면과 함께 먹으니 그 조화가 더욱 빛났다. 다만, 간이 조금 강한 편이라 짠맛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다음으로 맛본 것은 원앙볶음밥. 볶음밥 위에 붉은색과 흰색 소스가 반반씩 얹어져 있는 모습이 독특했다. 붉은 소스는 토마토를 베이스로 한 듯, 마치 피자 소스 같은 맛이 났다. 흰색 소스는 게살 소스처럼 부드럽고 고소했다. 두 가지 소스를 밥과 함께 비벼 먹으니, 묘하게 조화로운 맛이 느껴졌다. 밥알은 기름지지 않고 고슬고슬했고, 소스는 너무 묽지도, 진득하지도 않아 목 넘김이 좋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붉은 소스의 맛이 강하게 느껴져, 재주문 의향은 낮았다. 그래도 한 번쯤 경험해보기에는 괜찮은 메뉴였다.

마지막으로 맛본 것은 꾸라오르(광동식 탕수육). 튀긴 고기에 파인애플, 버섯, 브로콜리, 양파 등 다양한 채소를 함께 볶아낸 요리였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탕수육은, 입안에 넣는 순간 은은한 불향이 퍼져 풍미를 더했다. 소스는 과하게 달지 않아 좋았고, 채소들은 신선하고 쥬시했다. 특히, 탕수육 안에 들어있는 양배추는 느끼함 없이 부드럽고 바삭하게 씹히는 식감이 일품이었다. 흔한 탕수육이지만, 맛있는 곳은 흔치 않은데, 꺼거의 꾸라오르는 정말 훌륭했다.

하얼빈 맥주도 빼놓을 수 없다. 시원한 맥주 한 모금에, 입안 가득 퍼지는 파인애플 향. 마치 설원 연태를 살짝 섞은 듯한, 묘한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배는 부르지만 속은 편안했다. 퓨전 중식이라는 콘셉트답게, 흔한 중식 메뉴를 새롭게 재해석한 점이 돋보였다. 식당 외관, 인테리어, 음식의 비주얼, 맛,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특히, 직원분들의 친절한 서비스도 인상적이었다. 테이블을 옮겨주는 사소한 배려에 감동받았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가게가 협소하여 테이블 간 간격이 좁고,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또한, 음식 양이 가격에 비해 조금 적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웨이팅이 너무 길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주말 저녁에는 2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들을 감안하더라도, 꺼거는 충분히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곳이다. 홍콩의 정취를 느끼며, 맛있는 퓨전 중식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다음에 또 방문해서, 다른 메뉴들도 맛보고 싶다. 그땐 꼭 오이무침도 함께 주문해야지.
계산을 마치고 가게 문을 나섰다. 용리단길의 밤거리는 여전히 활기 넘쳤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꺼거에서 맛본 특별한 맛과 향, 그리고 그곳에서 느꼈던 따뜻한 분위기가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마치 홍콩 여행을 다녀온 듯한, 행복한 여운을 간직한 채 집으로 향했다.

꺼거, 용산 맛집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만한 곳이다. 다음에는 친구들과 함께 와서, 다양한 메뉴를 맛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땐 웨이팅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