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 맛마저 향긋한 추억, 문경새재 왕건집에서 찾은 숨은 맛집

문경새재의 가을은 그야말로 도파민 분출의 향연이었다. 붉게 물든 단풍잎들이 시각 피질을 자극하고, 청명한 가을 공기는 후각 신경을 간지럽혔다. 하지만 과학자에게 완벽한 하루란, 감각적 즐거움에 맛있는 음식이 더해진 상태.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자, 나의 뇌는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갈망하고 있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문경새재 초입에 자리 잡은 “왕건집”. 겉보기에는 여느 관광지 식당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김석훈의 여기바라’ 방송 출연 간판과, 왠지 모르게 정겨운 외관에서 숨겨진 맛의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노련한 연구자가 실험 데이터를 보기 전에 직감으로 결과를 예측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왕건집 식당 외부 전경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왕건집’ 간판. 이 집, 뭔가 숨겨진 내공이 느껴진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예상대로 ‘맛집’의 바이브가 느껴졌다. 벽면에는 과거 드라마 촬영팀들이 방문했던 흔적인 듯, 빛바랜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아마도 문경새재 세트장에서 촬영된 대조영, 왕건 같은 사극 드라마겠지. 왠지 모르게 믿음직스럽다. 마치 과학 논문에 실린 참고 문헌들을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메뉴판을 스캔한 결과, 우리의 선택은 ‘왕건 정식’이었다. 4인분부터 주문 가능하다는 말에 살짝 당황했지만, ‘이왕 온 거 제대로 먹어보자’라는 심정으로 밀어붙였다. 잠시 후, 상다리가 휘어질 듯한 한 상이 차려졌다. 돼지 양념구이, 간고등어구이, 더덕구이, 각종 나물 반찬, 된장찌개, 계란찜까지… 마치 생물학 실험에서 다양한 샘플을 한 번에 분석하는 기분이랄까.

가장 먼저 젓가락이 향한 곳은 역시 ‘돼지 양념구이’였다. 숯불 향이 은은하게 배어 있는 돼지고기는, 160도에서 마이야르 반응이 활발하게 일어난 듯, 먹음직스러운 갈색 크러스트를 자랑했다. 한 입 베어 무니, 입안에서 육즙이 폭발하며 숯불 향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캡사이신이 TRPV1 수용체를 자극하여 통증과 쾌감을 동시에 유발하는, 중독적인 매운맛 또한 일품이었다.

다음 타자는 ‘안동 간고등어 직화구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완벽한 굽기였다. 적당한 염도는 고등어 특유의 감칠맛을 극대화했고, 직화로 구워 기름기는 쫙 빠져 느끼함 없이 깔끔했다. 마치 잘 조절된 이온 농도와 온도에서 최적의 결과를 얻어내는 생화학 실험과 같다고나 할까. 다만, 어떤 방문자 리뷰처럼 아주 약간 탄 맛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는데, 오히려 그 탄 맛이 묘하게 향긋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역시 맛의 세계는 심오하다.

숯불 향이 가득한 돼지 양념구이
숯불 위에서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키며 맛있게 구워지는 돼지 양념구이. 캡사이신의 매운맛이 뇌를 자극한다.

‘더덕구이’는 살짝 아쉬웠다. 구이라기보다는 무침에 가까운 형태였고, 토치로 겉면만 살짝 구워 물기가 많았다. 더덕 특유의 아삭한 식감은 살아있었지만, 숯불 향이 부족해 풍미가 덜했다. 마치 실험 과정에서 변수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오차가 발생한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괜찮다. 과학에는 오차가 허용되듯이, 음식에도 완벽함만 있을 수는 없는 법.

반찬들은 하나하나 정갈하고 맛깔스러웠다. 특히 ‘집된장’으로 끓였다는 된장찌개는, 글루타메이트 함량이 높아 감칠맛이 극대화된, 그야말로 ‘밥도둑’이었다. 두부조림, 취나물 등도 훌륭했는데, 대체적으로 간이 조금 센 편이었다. 나트륨 섭취를 줄여야 하는 연구자에게는 살짝 부담스러웠지만, 짭짤한 맛이 묘하게 중독성을 자아냈다. 마치 과도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분비되는 코르티솔처럼, 쾌감과 동시에 건강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맛이랄까.

식사를 마치고 나니, 배는 빵빵하고 뇌는 행복으로 가득 찼다. ‘왕건집’, 예상대로 숨겨진 맛집이었다. 화려한 맛은 아니었지만, 정갈한 반찬과 숯불 향 가득한 메인 요리들은, 마치 고향에 온 듯한 푸근함을 선사했다. 특히 친절한 여사장님의 미소는,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하여 만족감을 더욱 높여주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가성비가 아주 훌륭한 편은 아니었고, 일부 메뉴는 간이 센 편이었다. 하지만 문경새재라는 관광지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맛있는 음식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마치 과학 연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희열과 같은 감정이랄까.

겉바속촉 안동 간고등어 구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안동 간고등어 구이. 적당한 염도가 밥맛을 돋운다.

‘왕건집’에서의 식사는, 단순한 식사를 넘어, 문경새재 여행의 완벽한 마침표를 찍는 경험이었다.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정겨운 사람들의 미소. 이 모든 요소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나의 뇌는 장기적인 행복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다음 문경 방문 시, 나는 주저 없이 ‘왕건집’을 다시 찾을 것이다. 그때는 오미자 삼겹살 숯불구이에 도전해봐야겠다. 그리고 사과즙과 오미자 막걸리도 잊지 말고 구매해야지. 과학자의 미각은, 언제나 새로운 맛을 탐구하고 발견하는 것을 갈망한다. 실험 결과, 이 집 된장찌개는 완벽했습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