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으로 향하는 길, 내 안의 미식 유전자가 꿈틀거렸다. 오늘 나의 실험 대상은 바로 ‘풍년당’. 30년 넘게 고창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분식집이다. 풍년당에 대한 사전 정보는 이랬다. 순대, 떡볶이, 튀김 삼박자를 고루 갖춘 곳. 특히 순대 맛이 압도적이라는 평이 많았다.
차창 밖 풍경이 점점 시골 풍경으로 바뀌어갈수록, 기대감은 마치 삼투압 현상처럼 점점 더 진해졌다. 드디어 풍년당 앞에 도착. 간판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흔적이 이곳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후각을 자극하는 기름진 튀김 냄새와 매콤한 떡볶이 향이 섞여 과학 실험실에 들어온 듯한 묘한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 스캔을 시작했다. 순대, 떡볶이, 튀김… 고민 끝에 ‘순대곱창떡볶이’라는 이곳만의 특별한 메뉴와, 놓칠 수 없는 ‘모듬튀김’을 주문했다. 마치 실험 도구를 세팅하는 과학자의 마음으로,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순대였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찰순대의 자태는 시각적으로도 훌륭한 식감을 예고했다. 한 점을 집어 입에 넣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돼지 특유의 잡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촉촉하고 쫄깃한 식감이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마치 숙련된 조향사가 섬세하게 블렌딩한 향수처럼, 완벽한 맛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소금을 살짝 찍어 먹으니, 순대 본연의 풍미가 더욱 깊어졌다. 짭짤한 염화나트륨(NaCl)이 미뢰를 자극하며 순대의 감칠맛을 극대화하는 과학적인 조화! 곁들여 나온 얇게 슬라이스된 단무지는 입안을 상쾌하게 정돈해 다음 맛을 맞이할 준비를 시켜주었다.

이어서 등장한 모듬튀김은 시각적인 향연이었다. 갓 튀겨져 나온 김말이, 고구마튀김, 야채튀김, 오징어튀김이 접시 위에 보기 좋게 담겨 있었다. 튀김옷은 황금빛 갈색을 띠고 있었고, 표면은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였다.
튀김옷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바삭’하는 소리가 청각을 자극했다. 160~180도 사이의 기름에서 일어나는 마이야르 반응 덕분에 튀김 표면에는 갈색 크러스트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 크러스트는 단순한 바삭함을 넘어, 고소하고 깊은 풍미를 선사했다.
김말이의 핵심은 당면이었다. 간장, 참기름, 후추 등으로 양념된 당면은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맛을 냈다. 특히 김 특유의 향긋한 풍미가 당면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야채튀김은 다양한 채소의 향긋함이 살아있었다. 양파의 단맛, 당근의 아삭함, 깻잎의 향긋함이 한데 어우러져 입안에서 다채로운 교향곡을 연주하는 듯했다.
고구마튀김은 달콤함의 극치였다. 고구마 속의 베타카로틴은 열에 의해 분해되어 더욱 단맛을 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고구마튀김은, 마치 잘 구워진 밤고구마를 먹는 듯한 기분이었다. 오징어튀김은 쫄깃한 오징어의 식감이 돋보였다. 튀김옷은 얇고 바삭했고, 오징어는 질기지 않고 부드러웠다. 특히 갓 튀겨져 나온 오징어튀김은, 입안에서 살살 녹는 듯한 느낌이었다.

드디어, 오늘의 메인 실험 메뉴인 ‘순대곱창떡볶이’가 등장했다. 떡볶이, 순대, 곱창, 그리고 쫄면 사리까지 푸짐하게 담긴 모습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떡볶이 국물은 붉은색을 띠고 있었지만, 과도하게 매워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향이 코를 자극하며 식욕을 돋우었다.
젓가락을 들어 떡볶이 떡을 집어 들었다. 쌀떡 특유의 쫄깃함이 느껴졌다. 떡볶이 국물은 떡 표면에 코팅되어 윤기를 더했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캡사이신이 TRPV1 수용체를 자극하며 통증과 쾌감을 동시에 선사했다. 엔도르핀이 분비되며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순대는 찰순대와 일반 순대 두 종류가 들어 있었다. 찰순대는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었고, 일반 순대는 부드러운 식감이 돋보였다. 특히 순대 특유의 고소한 풍미가 떡볶이 국물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냈다. 곱창은 쫄깃하면서도 고소한 맛을 더했다. 곱창 속에 들어 있는 곱은, 마치 버터처럼 부드럽게 녹아내리며 풍미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쫄면 사리는 떡볶이 국물을 듬뿍 머금고 있었다. 쫄면 특유의 쫄깃한 식감은 떡볶이의 쫄깃한 떡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특히 떡볶이 국물이 쫄면에 스며들어, 면을 먹을 때마다 매콤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순대곱창떡볶이의 화룡점정은 바로 떡볶이 국물이었다. 고추장의 매콤함, 설탕의 달콤함, 그리고 각종 향신료의 조화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특히 멸치, 다시마 등으로 우려낸 육수는 감칠맛을 더했다. 글루타메이트 함량이 높아 감칠맛이 극대화된 떡볶이 국물은, 숟가락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실험 결과, 이 집 떡볶이 국물은 완벽했다.
먹다 보니, 왜 풍년당이 30년 넘게 사랑받는 맛집인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파는 것을 넘어, 추억과 nostalgia를 함께 판매하는 곳이었다. 어릴 적 학교 앞에서 먹던 떡볶이의 추억,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먹던 순대의 기억, 가족들과 함께 즐거워했던 튀김의 추억… 풍년당은 그런 소중한 기억들을 되살려주는 공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서는 길, 풍년당은 내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마음까지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곳이었다. 마치 잘 설계된 과학 실험처럼, 모든 요소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최고의 맛을 만들어냈다.
고창에 다시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주저 없이 풍년당을 찾을 것이다. 그때는 또 어떤 새로운 맛의 발견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벌써부터 다음 실험이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