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통의 깊은 맛, 남대문 희락갈치에서 맛보는 추억의 서울 지역 맛집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목적지는 단 하나,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드나들던 남대문 시장의 갈치조림 골목이었다. 좁다란 골목 어귀에 들어서자, 매캐한 연기와 왁자지껄한 활기가 코를 찌른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사이로 언뜻 보이는 ‘희락갈치’ 간판. 그래, 바로 이 곳이었다. 50년 전통의 노포, 희락갈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외관은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한 반가움을 안겨주었다.

입구에 걸린 빛바랜 사진들은 이 곳의 역사를 증명하는 듯 했다. KBS, SBS, MBC 등 방송사 로고가 선명한 홍보판은 희락갈치가 얼마나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는지를 보여준다. 안으로 들어서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2층 좌식 테이블은 이미 만석이었고, 1층 테이블 몇 자리가 겨우 남아 있었다.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희락갈치 간판
50년 전통의 희락갈치, 그 세월을 짐작게 하는 간판

메뉴판을 보니 갈치조림, 모듬생선구이, 코다리양념구이 등이 눈에 띈다. 예전에는 없었던 코다리양념구이가 궁금했지만, 오늘은 추억을 되살리는 갈치조림을 선택하기로 했다. 갈치조림 2인분을 주문하자, 순식간에 밑반찬이 차려졌다. 배추김치와 도라지무침, 콩자반, 김, 그리고 빠지지 않는 계란찜까지. 소박하지만 정갈한 반찬들은 어릴 적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밥상을 떠올리게 했다.

특히 따뜻하게 부풀어 오른 계란찜은 그 부드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입안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한 식감은 갈치조림의 매콤함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어릴 적에는 계란찜만 몇 번이고 리필해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갈치조림과 밑반찬
갈치조림과 함께 정갈하게 차려진 밑반찬

잠시 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갈치조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양념이 자작하게 끓고 있는 냄비 안에는 통통한 갈치와 큼지막한 무가 넉넉하게 들어 있었다. 매콤한 향이 코를 간지럽히는 순간,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희락갈치의 갈치조림은 한눈에 보기에도 양념이 듬뿍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고춧가루를 아끼지 않은 듯, 진하고 깊은 붉은 빛깔은 식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본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하기 전, 먼저 국물부터 맛보았다. 첫 맛은 달콤했지만, 이내 칼칼한 매운맛이 입안 전체를 감쌌다. 혀끝을 톡톡 쏘는 듯한 매운맛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텁텁하지 않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매운맛은 희락갈치만의 비법 양념에서 비롯되는 듯했다. 달콤함과 매콤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국물은 그야말로 밥도둑이었다.

갈치조림 국물
매콤달콤한 양념이 밥맛을 돋우는 갈치조림

갈치 살은 어찌나 부드러운지, 젓가락을 대는 순간 살점이 후드득 떨어져 나왔다. 가시를 발라내어 따뜻한 밥 위에 얹어 먹으니, 입안 가득 행복이 퍼지는 듯했다. 특히 양념이 잘 배어든 무는 갈치조림의 숨은 공신이었다. 푹 익어 흐물흐물해진 무는 달콤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냈다. 숟가락으로 으깨어 밥과 함께 비벼 먹으니, 그 맛이 더욱 깊어졌다.

테이블 한 켠에 놓인 김에 밥과 갈치, 무를 함께 싸 먹으니, 이번에는 색다른 풍미가 느껴졌다. 짭짤한 김과 매콤달콤한 갈치조림의 조화는 환상적이었다. 김은 조미되지 않은 김이라, 갈치조림의 맛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어릴 적 어머니가 늘 이렇게 김에 싸서 먹여주시곤 했는데, 그 따뜻한 손길이 느껴지는 듯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손님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혼자 와서 갈치조림에 반주를 즐기는 어르신,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커플,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희락갈치의 갈치조림을 맛보기 위해 찾아오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남녀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는 갈치조림의 매력이란 대체 무엇일까.

희락갈치 가게 풍경
점심시간이 지나도 손님들로 북적이는 희락갈치

정신없이 갈치조림을 먹다 보니, 어느새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워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남은 양념에 밥을 비벼 김에 싸 먹으니, 또 다른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결국 밥 한 공기를 추가 주문하고 말았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희락갈치에서는 갈치조림 외에도 모듬생선구이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갈치, 꽁치, 굴비, 가자미 등 다양한 생선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모듬생선구이는 푸짐한 양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이 일품이라고 한다. 특히 짭짤하게 간이 되어 있어 굳이 간장에 찍어 먹지 않아도 맛있다고. 다음 방문에는 꼭 모듬생선구이를 맛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보니, 메뉴 가격이 예전보다 조금 오른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양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변함없었다. 게다가 밥은 무료로 추가할 수 있으니, 배불리 먹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모듬생선구이
다양한 생선을 맛볼 수 있는 모듬생선구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아까보다 더 짙어진 갈치조림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향긋한 냄새였다. 희락갈치는 내게 단순한 식당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어머니와의 추억, 남대문 시장의 활기, 그리고 변함없는 맛. 이 모든 것들이 희락갈치라는 이름 아래 오롯이 담겨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코다리양념구이를 맛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5년 만에 한국에 온 손님도 양념치킨 소스 같다며 좋아했다는 후기를 보니, 그 맛이 더욱 궁금해졌다. 다음에는 꼭 코다리양념구이와 갈치조림을 함께 주문해야겠다.

희락갈치를 나서며, 다음 방문을 기약했다. 숭례문 앞에 위치한 이 작은 골목은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변함없는 맛과 따뜻한 인심으로 가득한 희락갈치. 이곳은 영원히 내 마음속의 서울 맛집으로 기억될 것이다. 남대문 시장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꼭 한 번 들러 희락갈치의 갈치조림을 맛보길 바란다. 분명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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