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락 아래, 짙은 초록으로 물든 풍경 속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평화로운 공기가 감돈다. 꽉 막힌 도시의 소음 대신, 자연이 부르는 잔잔한 속삭임만이 귓가를 간질이는 이곳, 바로 화천의 재래시장이다. 버스터미널과 가까워 접근성 또한 굿, 처음 오는 사람도 길 잃을 걱정은 뚝!

시장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다름 아닌 정육점들. 마치 이곳이 고기 맛집의 성지라도 되는 듯, 신선한 고기들이 저마다의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나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곳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직접 채소를 재배한다는 ‘황해식당’. 싱싱한 재료에 대한 자신감은 어떤 음식에도 깃드는 법. 괜히 기대감이 뿜뿜 솟아올랐다.

먼저 입맛을 돋운 것은 갓 무쳐낸 듯한 아삭한 무김치와 짭짤한 맛이 일품인 무 짠지. 아, 이거 완전 물건인데? 톡 쏘는 신선함과 은은한 단맛의 조화가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밥 한 숟갈 위에 얹어 먹으니, 밥맛이 절로 살아나는 마법. 슴슴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에 저절로 엄지 척이 올라갔다.

본격적으로 메인 메뉴를 탐색할 시간. 메뉴판을 훑어보던 중, ‘유계장’이라는 낯선 이름에 시선이 꽂혔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맛보기 힘든 메뉴라는 말에, 망설임 없이 주문을 외쳤다. 기다리는 동안, 시장 안을 둘러보는데, ‘서울떡집’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떡순이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떡 맛좀 안다는 사람들의 추천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쫀득한 식감과 은은한 단맛이 조화로운 떡들은, 그야말로 떡맛의 정석을 보여주는 듯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유계장이 나왔다. 뽀얀 국물 위에 파릇한 파와 찢어 넣은 고기가 먹음직스럽게 올려져 있었다. 한 숟갈 떠먹는 순간, 입안 가득 퍼지는 깊고 진한 국물의 풍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맵지도, 짜지도 않은 딱 적당한 간이 황해식당만의 노하우를 증명하는 듯했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우러나오는 닭고기와 부드러운 식감은 금상첨화. 한입 먹자마자 텐션이 확 올라오는 짜릿함! 밥 말아 먹으면 이건 뭐, 천상의 맛이 따로 없지.

이곳 황해식당의 음식들은 하나같이 정갈하고 깔끔했다. 직접 재배한 채소를 사용해서 그런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집중한 느낌. 맛의 흐름이 꽤 선명하게 느껴졌다. 곁들여 나온 깍두기와 젓갈 또한 훌륭한 킥을 더해주어,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는 건 순식간이었다.

맛있는 음식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니, 이제 시장 구석구석을 누빌 시간. 그런데 잠시, 화장실에 들르려다 앗! 이런, 휴지가 없네? 이런 작은 디테일 하나가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혹시 화천시장에서 급한 볼일을 해결해야 한다면,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 두루마리 휴지를 미리 챙기는 센스, 잊지 말아야 할 포인트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아쉬움도, 시장을 가득 채운 활기와 정겨움 앞에서는 금세 잊힌다. 상인들의 푸근한 인심과 갓 만들어낸 신선한 먹거리들. 평범해 보이는 풍경 속에서 발견하는 소소한 즐거움들이 나를 미소 짓게 만든다. 마치 낡은 LP판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익숙하면서도 깊은 울림.
화천시장, 이곳은 단순한 먹거리 천국 그 이상이었다. 시골 마을의 따뜻한 정과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공간. 정겨운 풍경 속에 숨겨진 ‘황해식당’의 유계장과 ‘서울떡집’의 떡은, 잊지 못할 맛의 추억을 선물했다. 다음에 다시 화천을 찾는다면, 이곳에서 또 어떤 맛있는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까. 벌써부터 다음 방문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