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걸었을까. 푸른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초록빛 능선과 듬성듬성 자리한 밭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이곳이 바로 울릉도의 속살, 나리분지라는 것을 실감케 하는 풍경이었다. 낯선 곳에서의 설렘은 언제나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든다. 걷고 또 걸으며 숨겨진 보석 같은 식당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여행의 묘미다.

저 멀리 낡은 듯 정겨운 목조 건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산마을’이라는 간판이 삐뚤빼뚤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산골 깊숙한 곳에 자리한 식당은 마치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듯, 주변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삐걱이는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무 향이 물씬 풍기는 따뜻한 온기가 나를 반겼다.

내부는 짙은 나무 기둥과 서까래, 그리고 벽면에 걸린 빛바랜 사진들로 채워져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고즈넉한 분위기. 벽을 장식한 액자 속에는 울릉도의 풍경과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이 담겨 있었다.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 속 식당이 아니라, 지역 사람들의 추억과 역사를 함께 간직한 공간임을 직감했다.

메뉴판을 살펴보니, 이곳의 자랑거리가 무엇인지 금세 알 수 있었다. ‘씨껍데기 막걸리’, ‘엉겅퀴 국’, ‘산채비빔밥’, ‘삼나물 무침’ 등 울릉도의 자연이 담긴 건강한 메뉴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히 ‘씨껍데기 막걸리’는 이곳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특별한 막걸리라고 했다. 울릉도의 맑은 물로 빚었다는 이 막걸리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가장 먼저 맛보기로 한 것은 역시 ‘씨껍데기 막걸리’와 ‘산채전’이었다. 갓 부쳐 나온 산채전은 다양한 산나물과 해산물이 어우러져 풍성한 맛을 자랑했다. 겉은 노릇하게 구워져 바삭했고, 속은 산나물의 신선함과 해산물의 쫄깃함이 살아있었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는 것이, 막걸리를 절로 부르게 했다.

드디어 ‘씨껍데기 막걸리’가 나왔다. 뽀얀 빛깔에 걸쭉한 질감, 그리고 은은하게 풍기는 곡물의 향이 인상적이었다. 한 모금 넘기자, 목 넘김이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느껴졌다. 여느 막걸리와는 다른 독특한 풍미였다. 숙취나 두통이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울릉도의 맑은 기운을 담아 빚어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이 막걸리 덕분에 저녁에 술을 못 마셨다는 사람들의 리뷰가 떠올랐지만, 나는 이 새로운 맛에 흠뻑 빠져들었다. (물론, 다른 막걸리들도 준비되어 있으니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이어서 주문한 ‘엉겅퀴 국’과 ‘산채비빔밥’이 차려졌다. 처음 먹어보는 엉겅퀴 국은 생각보다 훨씬 부드럽고 담백했다. 씁쓸한 맛이 날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은은한 향과 함께 깔끔한 맛이 돋보였다. 마치 신선한 나물을 끓여 먹는 듯한 느낌이었다.
산채비빔밥은 형형색색의 나물들이 조화롭게 담겨 나와 눈으로 먼저 즐거움을 선사했다. 직접 채취했음직한 신선한 나물들은 저마다의 향과 식감을 자랑했다. 짜지 않고 슴슴하게 무쳐낸 나물들은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건강한 맛이었다. 밥에 고추장 한 숟갈과 함께 쓱쓱 비벼 먹으니, 속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반찬 리필도 여러 번이나 기꺼이 해주시는 넉넉함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가게에 비해 약간은 저렴한 가격도 좋았다. 음식의 양도 적당했고, 무엇보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려는 정성이 느껴졌다. 물론, 계산에만 집중하는 듯한 약간은 무뚝뚝한 모습도 없지 않았지만,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듯했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듯한 모습도 정겨웠다. 사장님의 이야기도 귀엽게 들렸고, 두 분이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왠지 모르게 웃음을 자아냈다.
이곳은 방송에도 많이 소개된 곳이지만, 현지인들의 추천에 더 믿음이 갔다. 나리분지 버스 기사님의 추천으로 찾아왔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깃대봉 등산 후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곳이었다.
여행 중 만나는 식당은 단순한 끼니 해결의 장소가 아니다. 그 지역의 문화와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창이기도 하다. ‘산마을’은 울릉도의 자연이 고스란히 담긴 건강한 음식과 더불어, 정겨운 분위기와 따뜻한 추억까지 선물해 주었다. 다음에 울릉도를 다시 찾게 된다면, 나는 분명 이곳을 다시 방문할 것이다. 200% 재방문의사를 품고, 나리분지의 깊은 품속에서 발견한 이 보석 같은 식당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