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공기를 가르며 길을 나섰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밤의 서늘함이 뺨을 스치는 와중에도, 뱃속에서는 이미 오늘의 여정을 향한 묘한 설렘이 요동치고 있었다. 낯선 동네, 낯선 식당. 그러나 이곳에 대한 기대감은 꽤 오래전부터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미친 맛집’이라는 수식어와, 그 맛에 대한 찬사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과연 어떤 세상의 맛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왁자지껄한 소란함 대신 차분하고 정갈한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나무 질감이 살아있는 테이블과 은은한 조명이 더해져, 마치 오랜 친구의 집에 온 듯 편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여러 방문객들의 이야기가 겹쳐 떠올랐다. 어떤 이는 ‘슴슴하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집밥 같다’고 했다. 그 슴슴함 속에서 ‘엄청 맛있다’는 찬사를 보낸 이도 있었고, ‘건강한 맛’이라며 고개를 끄덕인 이도 있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앞에 놓인 큼직한 뚝배기에서 피어오르는 온기를 느꼈다.

가장 먼저 내 앞에 놓인 것은 뽀얀 국물의 재첩국이었다. 뚝배기 위로는 향긋한 부추가 소복하게 얹혀 있었고, 숟가락을 살짝 담그자 하얀 국물 사이로 뽀얀 재첩 알갱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첫 입을 떠 먹었을 때, 놀랍도록 맑고 시원한 국물이 입안 가득 퍼졌다. 어떤 이들은 ‘가볍다’고 표현했지만, 내게는 마치 속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듯한 청량함이었다. 강렬한 인상을 주지는 않았지만, 은은하게 퍼지는 대파 향과 재첩 본연의 시원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마치 갓 해장을 한 듯,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내, 나의 시선은 테이블 한가운데 놓인 고등어 조림으로 향했다. 짙은 양념에 졸여진 고등어는 윤기가 자르르 흘렀고, 그 사이사이에는 달큰하게 졸아든 무가 큼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누군가는 ‘무에서 고구마 맛이 난다’고 했을 정도로, 이 집의 무는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젓가락으로 고등어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자, 비린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양념이 잘 배어든 고등어 살은 촉촉하면서도 부드러웠고, 함께 졸여진 무는 고등어의 감칠맛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성한 맛을 선사했다. 쌈 채소에 무와 고등어를 올리고 한입 가득 쌈을 싸 먹는 순간, ‘이것이 바로 밥도둑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짭쪼름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딱 좋은 간이었다.

이곳은 단순히 메인 메뉴만으로 승부하는 곳이 아니었다. 곁들여 나오는 반찬 하나하나에도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짭짤한 젓갈부터, 향긋한 나물 무침, 새콤달콤한 김치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모든 반찬이 훌륭했다. 심지어 잡채나 미역 무침 같은 메뉴에서도 흔히 맛볼 수 없는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이는 ‘반찬 하나하나 다 맛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특히 이곳의 ‘가성비’에 대한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다. 14,000원이라는 가격에 이토록 푸짐하고 맛있는 한 끼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었다. 최근 물가가 많이 오른 탓에, 이 정도 가격에 이만한 만족도를 주는 식당을 찾기란 쉽지 않다. ‘양이 많다’는 평가 역시 공감할 수 있었다. 밥 두 공기를 뚝딱 비우는 동안에도 전혀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니, 오후 내내 왠지 모를 든든함이 느껴졌다.
물론,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슴슴하다’는 평가가 ‘아쉬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고, ‘가볍다’는 느낌이 ‘밍밍하다’는 실망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탓에 ‘예상보다 달았다’거나 ‘기름기가 많았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다양한 의견들 속에서 이 식당이 가진 고유한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맛보다는,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집밥’ 같은 맛. 신선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는 슴슴함. 그것이 바로 이 부산 맛집이 가진 진정한 힘이 아닐까.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열어, 늦은 점심까지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곳. 때로는 20-30분의 웨이팅은 기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이곳을 다시 찾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재방문 의사 100%’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나 역시 이곳을 나서면서, 다음에 또 찾아올 날을 기약하게 되었다.
사실 이곳은 ‘나만 알고 싶은 식당’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소중한 보물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성시경과 같은 유명인들이 다녀간 후, 이제는 많은 이들이 그 맛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맛과 친절한 서비스는 이곳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친절하다’는 리뷰가 많은 만큼, 직원들의 밝고 따뜻한 응대는 식사의 즐거움을 더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는 이들의 분주한 하루 속에서, 따뜻한 밥 한 끼로 위로받는 순간들은 소중하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진정한 ‘맛’이란 무엇인지 되새기게 하는 곳. 슴슴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그 맛, 그것이 바로 내가 이곳에서 경험한 세상의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