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늘 예기치 못한 발견으로 가득하다. 특히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는 더욱 그렇다. 낯선 곳에서의 한 끼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그 지역의 풍경과 사람, 그리고 역사를 오롯이 담아내는 소중한 경험이 된다. 이번 고흥 여행에서도 그러한 발견이 기다리고 있었다. 늦은 금요일 밤, 겨울 추위가 매섭게 느껴지던 탓인지 거리는 한산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뭘 먹을까 고민하던 차에, 예전에 봐두었던 한 노포 식당이 떠올랐다. 1인분 주문이 가능할까, 혼자 가도 어색하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오늘도 혼밥 성공!’이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다.
식당 안은 예상외로 따뜻한 온기가 감돌았다. 바깥의 추위와는 대조적으로, 테이블 몇 개에 손님이 앉아 조용히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그리 붐비지 않아 오히려 좋았다. 조명은 은은했고, 오래된 나무 테이블과 벽면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어 정겨운 느낌을 주었다. 카운터석이나 1인 좌석은 따로 보이지 않았지만, 다행히 가장 안쪽 창가 쪽에 2인석 테이블이 비어 있었다. 혼자 앉아도 전혀 눈치 보이지 않을 만한 자리였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훑어보았다. 고흥의 향토음식이 주를 이루는 듯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황가오리회와 간’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메뉴였지만, 설명을 보니 이 식당의 대표 메뉴인 듯했다. 혼자라 작은 사이즈를 주문할 수 있는지 여쭤보니 흔쾌히 가능하다고 하셨다. 1인분을 주문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다는 점은 혼밥족에게 큰 메리트였다.
주문 후 잠시 기다리니, 주인 어르신께서 직접 회를 떠주신다. 주방 쪽에서 느껴지는 경쾌한 칼질 소리가 맛있는 음식이 곧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더욱 증폭시켰다. 곧이어 테이블 위에 놓인 황가오리회와 간. 생각보다 양이 푸짐했다. 얇게 썰린 황가오리회는 붉은 점들이 박혀 있어 독특한 비주얼을 자랑했고, 큼직하게 썰린 간은 신선한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주인 어르신께서 직접 먹는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고흥에 처음 와봤다고 말씀드렸더니, 마치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따뜻하게 응대해주셨다. “첫 쌈은 제가 특별히 싸 드릴게요.” 하시며 깻잎지에 신선한 황가오리회 한 점, 그리고 참기름과 다진 마늘이 곁들여진 양념장을 올려 능숙하게 싸주셨다. 첫 입은 역시 입안 가득 퍼지는 황홀경 그 자체였다.

“한우 육사시미 맛이 날 거라”는 어르신의 말씀에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회에서 육사시미 맛이 어떻게 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한 점을 맛보고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정말이었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 그리고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듯한 풍미가 마치 고급 한우 육사시미를 먹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신선함은 기본이고, 은은하게 퍼지는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깻잎지에 싸 먹어도 맛있고, 쌈장을 살짝 찍어 먹어도, 혹은 간장과 참기름을 섞은 특제 소스에 찍어 먹어도 모두 훌륭했다. 특히 황가오리회와 함께 나온 간은 퍽퍽하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씹을수록 깊은 풍미가 우러나와 젓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밑반찬도 하나하나 정성이 느껴졌다. 새콤달콤하게 잘 익은 김치, 아삭하게 살아있는 콩나물무침, 그리고 싱싱한 쌈 채소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황가오리회 맛을 돋우는 데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씹을수록 고소한 풍미가 나는 깻잎 장아찌는 황가오리회와 환상의 궁합을 자랑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황가오리회 한 점, 간 한 점이 아쉽지 않을까 싶었지만, 작은 사이즈임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려내 만족스러웠다. 다른 테이블에서 병어조림을 주문한 것을 보니 다음 방문 시에는 병어조림도 꼭 맛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 어르신과의 짧은 대화 속에서 이 식당이 얼마나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왔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꼼꼼하게 주문을 확인하고,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정성을 다하는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식당에서 주문할 때 2번 이상 얼굴 보고 재차 알려주세요. 낭패 봅니다.’ 라는 리뷰가 있었는데, 아마도 그만큼 세심하게 신경 써주시는 주인분들의 마음이 담긴 조언이 아닐까 싶었다.
겨울밤의 쓸쓸함을 달래주기에 충분한 맛이었다. 혼자 왔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고, 오히려 이 특별한 음식을 온전히 음미할 수 있어 감사했다. 이곳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 따뜻한 인심과 정이 흐르는 곳이었다. 다음에 고흥에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꼭 다시 찾아가 다른 메뉴도 맛보고 싶다.
여행객들에게 고흥을 추천하라고 한다면, 이 식당은 빼놓을 수 없는 명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특히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도 전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혼자여도 괜찮아”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그런 따뜻한 식당이었다.
정말이지, 이곳에서의 식사는 고흥 여행의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다음 여정에서는 또 어떤 맛있는 발견이 기다리고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