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의 깊은 산자락,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따라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유천리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목적지는 4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천막국수 본점. 화려한 간판 대신, 붉은색 바탕에 큼지막하게 쓰인 ‘유천막국수’ 네 글자가 정겹게 나를 맞이했다.

주차장이 협소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근처 유천보건진료소에 차를 대고 걸어갔다. 좁은 골목길 안쪽에 자리 잡은 식당은, 마치 오랜 친구 집에 놀러 온 듯한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니, 낮은 천장과 정겨운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벽면에는 빼곡하게 채워진 낙서와 사인이 마치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듯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BTS RM의 사인!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졌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살펴보니, 물막국수, 비빔막국수, 온면, 수육, 꿩만두찜 등 다양한 메뉴가 있었다. 고민 끝에 물막국수와 수육, 그리고 꿩만두찜을 주문했다. 잠시 후, 정갈하게 차려진 한 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겨 나온 막국수는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느낌을 자아냈다.

물막국수의 첫인상은 맑고 깔끔한 육수였다. 흔히 동치미 국물을 사용하는 막국수와는 달리, 간장과 된장으로 맛을 낸 육수라고 했다. 짭짤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이 느껴지는 독특한 육수였다. 면은 메밀 함량이 높지 않은 듯 쫄깃한 식감이었다. 면발에 묻어있는 전분 덕분에 국물이 더욱 부드럽고 고소하게 느껴졌다. 테이블에 비치된 설탕과 식초를 살짝 넣어 나만의 스타일로 맛을 조절해 먹으니 더욱 만족스러웠다. 김치를 곁들여 먹으니, 시원하고 깔끔한 막국수와 아삭한 김치의 조화가 훌륭했다.

수육은 얇게 썰어낸 돼지고기 오겹살이 윤기를 뽐내고 있었다. 된장, 채소와 함께 삶아 잡내 없이 깔끔했고, 얇게 썰어낸 덕분에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듯 부드러웠다. 쌈장에 콕 찍어 신선한 상추에 싸 먹으니, 고소한 육즙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막국수와 함께 먹으니, 느끼함은 사라지고 담백함만 남았다.

꿩만두찜은 얇고 투명한 만두피 속에 꿩고기와 채소가 듬뿍 들어 있었다. 한 입 베어 무니, 꿩 특유의 담백한 풍미와 촉촉한 육즙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톡톡 터지는 듯한 만두피의 식감도 훌륭했다. 특히 꿩만두찜에는 들기름을 살짝 뿌려주는데, 고소한 향이 꿩고기의 풍미를 더욱 깊게 만들어주었다.

유천막국수의 또 다른 매력은 푸근한 인심과 친절한 서비스였다. 직원분들은 메뉴에 대한 설명을 꼼꼼하게 해주었고, 특히 아이와 함께 온 손님에게는 아기용 국수를 따로 준비해주는 세심한 배려를 보여주었다. 반찬으로 제공되는 김치 또한 직접 농사지은 재료로 만들었다고 하니, 더욱 믿음이 갔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평창의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감쌌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은 따뜻해졌다. 유천막국수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 정겨운 분위기와 따뜻한 인심이 함께하는 곳이었다. 화려한 맛은 아니지만, 집밥처럼 편안하고 건강한 느낌이 묘하게 든든하게 느껴졌다.

아쉬운 마음에 비빔막국수를 포장했다. 숙소에 돌아와 맛을 보니, 고추장 향이 강하지 않고 적당히 매콤달콤한 양념이 입맛을 돋우었다. 슴슴한 물막국수와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다음에는 꼭 온면과 메밀전병도 맛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천막국수는 평창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평창 지역을 방문한다면, 꼭 한번 들러보길 추천하는 숨은 맛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