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저녁, 퇴근길에 문득 시원한 물회가 간절하게 떠올랐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나러 가는 듯한 설렘을 안고, 신도림의 골목길을 헤쳐 나갔다. 오늘 나의 발길을 이끈 곳은, 아는 사람만 찾아간다는 숨겨진 보석 같은 곳, 바로 ‘광영수산’이다. 간판부터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 정겨운 느낌을 풍겼다. 왠지 모르게, 이 곳에서라면 잊고 지냈던 젊은 날의 추억 한 조각쯤은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게 앞에 다다르니, 밖에서부터 풍겨오는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코를 간지럽혔다. 파란색 바탕에 붉은 글씨로 큼지막하게 쓰인 “산 오징어” 간판이 눈에 띈다. 그 아래,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나무 판자에 빼곡하게 적힌 메뉴들이 마치 오래된 영화 포스터처럼 정겹다 . 왠지 모르게, 이런 노포 분위기에서는 최신식 터치스크린 메뉴판보다 손글씨로 삐뚤빼뚤 적힌 메뉴판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생각보다 아담한 공간이 펼쳐졌다. 테이블 간 간격이 좁은 탓에, 옆 테이블 손님들의 이야기 소리가 웅성거리는 가운데, 정겨운 활기가 느껴졌다. 마치 오래된 흑백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시간마저 멈춘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시원한 물회부터 주문했다. 곁들여 먹을 만한 메뉴를 찾다가, 사장님의 추천으로 그날 막 들어온 싱싱한 도다리도 함께 주문했다. 주문을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 밑반찬들이 테이블 위로 하나 둘씩 놓이기 시작했다. 콩나물국과 따뜻하게 구워져 나온 꽁치구이, 그리고 짭짤한 맛이 일품인 간장게장이 눈에 띄었다. 특히 꽁치구이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서, 메인 메뉴가 나오기 전에 이미 절반이나 먹어 치웠다. 소박하지만 정갈한 밑반찬들에서, 오랜 시간 이 자리를 지켜온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이 느껴졌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물회가 등장했다. 뽀얗게 살얼음이 낀 육수 위에, 싱싱한 해산물이 듬뿍 올려져 있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젓가락으로 휘휘 저으니, 탱글탱글한 광어회와 꼬득꼬득한 해삼, 그리고 아삭아삭한 채소가 한데 어우러져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냈다.

젓가락을 들어 광어회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으니, 싱싱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쫄깃쫄깃한 식감과 함께, 입안 가득 퍼지는 은은한 단맛이 일품이었다. 뒤이어 꼬득꼬득한 해삼을 맛보니, 특유의 바다 향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아삭아삭한 채소는 신선함을 더했고, 살얼음이 낀 육수는 입안을 시원하게 감싸 안았다. 이 모든 맛이 한데 어우러져, 최고의 맛을 선사했다. 과연, 신도림에서 물회로 명성이 자자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쉴 새 없이 젓가락을 움직이며 물회를 맛보는 사이, 어느새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시원한 물회 덕분에 더위는 싹 가시는 듯했다.
물회를 어느 정도 먹어갈 때쯤, 기다리고 기다리던 도다리가 등장했다. 얇게 포를 뜬 도다리회는, 마치 흰 눈이 소복하게 쌓인 듯한 비주얼을 자랑했다 .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도다리회는, 보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게 했다. 젓가락으로 도다리회 한 점을 집어, 쌈장에 콕 찍어 입에 넣으니,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환상적이었다. 특히, 도다리 특유의 은은한 단맛은, 쌈장의 짭짤한 맛과 어우러져 최고의 맛을 선사했다.

사장님께서 추천해주신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니, 그 맛이 더욱 환상적으로 느껴졌다. 톡 쏘는 막걸리의 청량감이, 도다리회의 신선함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입안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마치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닷가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도다리회를 맛보는 동안, 밑반찬으로 나온 생선구이도 함께 즐겼다. 짭짤하게 간이 된 생선구이는, 밥반찬으로도 훌륭했지만, 술안주로도 제격이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술잔은 비워지고, 접시에는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하지만, 입안에는 여전히 도다리의 은은한 단맛과 막걸리의 청량감이 감돌았다. 계산을 마치고 가게 문을 나서니, 어둠이 짙게 드리워진 신도림의 밤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배는 든든했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다음에 또 방문해서, 그 때는 다른 메뉴에도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겨울에 맛볼 수 있다는 대방어회와 석화는 꼭 먹어보고 싶다.
광영수산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닌, 정겨운 분위기와 넉넉한 인심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화려한 인테리어나 최신식 시설은 없었지만, 소박하고 정감 있는 분위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마치 고향에 내려온 듯한 푸근함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게다가, 사장님 내외분의 친절함은, 맛있는 음식 맛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다음에는 친구들과 함께 방문해서, 푸짐한 해산물과 함께 술 한잔 기울여야겠다.

광영수산에서의 저녁 식사는, 잊고 지냈던 소중한 추억들을 떠올리게 해준 특별한 경험이었다. 팍팍한 도시 생활에 지쳐 있던 나에게, 잠시나마 여유와 힐링을 선물해준 곳. 신도림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꼭 한번 들러보라고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단, 테이블이 많지 않아 웨이팅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훌륭한 맛과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광영수산에서 맛본 물회와 도다리회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신도림의 숨은 맛집에서,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다음에 또 방문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오늘의 맛있는 기억을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