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저녁 바람이 제법 선선해진 계절, 동네 골목길을 걷듯 발걸음을 옮겨 광교 아브뉴프랑에 들어섰다. 화려한 네온사인보다는 차분한 조명과 정갈한 상점들이 늘어선 이곳은,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산책이 되는 곳이다. 수많은 가게들 사이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한 곳은 다름 아닌 ‘정희’.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에 어떤 매력이 숨어 있을지 늘 궁금했는데, 오늘에서야 비로소 그 궁금증을 풀게 되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은은한 우드톤의 인테리어와 모던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치 오랜 친구의 집에 초대받은 듯한 아늑함이 느껴졌다. 이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적인 한식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퓨전 한식집이라고 했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정감 가는 이름 ‘정희’처럼 말이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단연 ‘특별함’이었다. 흔히 맛볼 수 없는 독창적인 메뉴 구성은 메뉴판을 훑는 동안에도 즐거움을 선사했다. 특히 입소문을 타고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메뉴는 ‘고사리 크림수제비’. 고사리라 하면 주로 산나물로 접하기 쉬운데, 이를 크림 수제비에 접목시켰다는 점이 신선했다. 푹 삶아 부드러워진 고사리의 구수함과 진한 크림소스, 여기에 풍미를 더하는 들깨와 트러플 오일의 조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꾸덕한 소스가 쫄깃한 수제비를 감싸 안으며 입안 가득 고소함과 깊은 풍미를 선사했다. 마치 익숙한 듯 낯선,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곳을 방문한 많은 이들이 ‘감자전’을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것을 보았다. 정희의 감자전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그야말로 ‘겉바속촉’의 정석을 보여준다. 특히 새우가 듬뿍 들어가 있어 씹을 때마다 고소한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지는 것이 일품이다. 얇게 썰어 튀긴 건새우가 더해져 식감까지 살린 점이 섬세하게 느껴졌다. 곁들여 나오는 소스 또한 튀김의 느끼함을 잡아주면서도 감자의 담백함과 잘 어우러져, 자꾸만 손이 가는 맛이었다. 씹을수록 고소함이 배가 되는, 누구나 좋아할 만한 메뉴였다.

‘깻잎 고등어 지짐밥’ 또한 이 집만의 특별함을 보여주는 메뉴였다. 짭조름한 깻잎으로 감싼 밥 위에 든든한 고등어가 올라가 있는 모습은 시각적으로도 흥미로웠다. 비리지 않고 담백하게 구워진 고등어와 짭짤한 깻잎, 그리고 밥의 조화는 예상외로 훌륭했다. 깻잎의 향긋함과 고등어의 고소함, 그리고 밥알의 찰기가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성한 맛을 선사했다. 어디에서도 쉽게 맛볼 수 없는 독특한 조합이었지만,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매콤 들기름 메밀면’ 역시 인상 깊었던 메뉴 중 하나였다. 짙은 색감의 메밀면 위로 김가루와 깨소금이 뿌려져 있었고, 매콤한 소스가 곁들여져 나왔다. 첫 맛은 은은한 들기름의 고소함과 메밀면의 담백함이 느껴지다가, 이내 매콤한 소스가 입안을 감싸며 깔끔한 마무리를 선사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계속해서 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짭조름한 김가루가 중간중간 씹히는 식감 또한 맛의 재미를 더했다. 가볍게 즐기기에도, 든든하게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는 메뉴였다.

이 외에도 ‘감태 타르타르’는 신선한 육회와 향긋한 감태의 조합이 마치 고급 스시를 먹는 듯한 깔끔한 맛을 선사했다. ‘묵은지 회말이’ 또한 묵은지의 새콤함과 신선한 회의 조화가 입맛을 돋우는 별미였다. 삼합 메뉴도 인기가 많다고 하는데, 고기와 김치, 꼬막무침의 조합은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만한 구성이었다.
정희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넘어, ‘대접받는 느낌’을 선사하는 곳이었다. 정갈하게 차려진 플레이팅, 고급스러운 식기, 그리고 친절한 서비스까지. 마치 소중한 사람과의 만찬을 위해 정성껏 준비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퓨전 한식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익숙한 맛을 새롭게 재해석하여 우리의 미각을 즐겁게 해주는 곳이었다.
특히 좋았던 점은 이곳이 ‘가족 모임’ 장소로도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어른들 입맛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담백한 메뉴부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까지 다양하게 갖추고 있었다. 유아 의자도 준비되어 있어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도 편안한 식사를 제공한다. 매장이 넓고 쾌적해서 대화하기에도 좋고, 주변 소음에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식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굳이 꼽자면, 일부 메뉴의 양이 푸짐한 편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이것저것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다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서 양보다는 ‘다양한 경험’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양이 많지 않다는 점은 오히려 가격 대비 만족도를 높이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 입안에 남는 은은한 맛과 마음속에 채워지는 든든함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았다. ‘정희’는 단순한 맛집을 넘어, 특별한 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오고 싶은 ‘추억의 장소’로 자리매김할 만한 곳이었다. 동네 골목길 탐험가로서, 이곳 ‘정희’는 분명 오래도록 기억될 만한 가치가 있는, 자신 있게 추천하는 퓨전 한식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