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운동을 마치고 허기진 배를 채우러 향한 곳은 동네에 새로 생긴 순댓국집이었다. 저녁 7시 50분,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은 어스름한 저녁이었지만 가게 안은 이미 꽤 분주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은은한 조명 아래 나무 테이블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고, 갓 조리된 음식 냄새와 함께 묘한 고소함이 코를 간질였다. 혼자 온 손님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살짝 걱정하며 둘러보았는데, 다행히도 카운터석은 아니었지만 테이블 간격이 넉넉하고 편안한 분위기라 혼자서도 전혀 어색함 없이 식사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훑어보니 역시 순댓국이 메인 메뉴인 듯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순댓국 하나를 주문했다. 혼밥족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1인분 주문 가능 여부’와 ‘혼자서도 눈치 보지 않을 만한 분위기’ 모두 충족시켜 주는 이곳이라니, 이미 절반은 만족한 기분이었다. 곧이어 기본 반찬들이 정갈하게 차려졌다. 갓 담근 듯 신선해 보이는 배추김치와 깍두기, 그리고 색다른 조합의 오이김치와 마늘장아찌까지. 평소 김치 맛에 예민한 편인데, 이 집 김치는 겉보기에도 맛깔스러워 보였고 실제로도 훌륭했다. 김치들이 먼저 나와서 적당히 덜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주는 시스템도 혼자 온 사람에게는 더욱 편리하게 느껴졌다.

기본 반찬을 맛보며 잠시 기다리자, 오늘의 주인공 순댓국이 드디어 등장했다. 뚝배기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빨간 국물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첫인상부터가 강렬했다. 보통 순댓국을 주문하면 따로 간을 해야 하거나, 맑은 국물에 다대기 등을 넣어 얼큰하게 만들어 먹는데, 이 집 순댓국은 처음부터 간이 되어 있는 듯했다. 국물을 한 숟갈 떠서 맛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깔끔하고 깊은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잡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깔끔한 육수와 적절한 양념의 조화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제 순대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집은 ‘피순대’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보통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당면이 많이 들어간 순대와는 조금 다른, 피를 이용해 만든 순대였다. 처음 피순대라는 말을 들었을 때, 혹시나 비린 맛이 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함께 나온 순대는 겉보기에도 짙은 색을 띠었고,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느껴지는 식감과 풍미가 정말 특별했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고, 피 특유의 고소함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함께 나온 순대는 단순히 속이 꽉 찬 것이 아니라, 오소리감투와 애기보 같은 내장 부위도 함께 제공되어 씹는 맛을 더했다. 고기보다는 내장 종류가 많은 편이라 취향이 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풍부한 식감과 맛의 조화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순댓국 국물을 숟가락으로 계속 떠먹으면서, 왜인지 모르겠지만 손님 중에 여성보다는 남성 손님이 더 많이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마도 이 집의 피순대와 내장 위주의 구성이 술과 함께 든든한 안주를 찾는 남성 손님들의 취향을 더 잘 저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자 온 사람이 어색할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묵묵히 자신만의 순댓국 한 그릇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편안함을 주었다. 밥 한 숟가락에 순대, 그리고 김치까지 곁들여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서울에서 이렇게 제대로 된 피순대를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반가웠다.

사실, 다른 날 모듬순대를 포장해서 집에 가져가 먹었을 때 제공받았던 김치에서 살짝 쉰 내가 났던 경험이 있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매장에서 직접 먹었던 김치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순댓국의 맛을 한층 더 끌어올려 주었기에 이번 방문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마도 포장 시에는 김치가 약간의 변질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집의 김치는 맛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보니, 밤 10시가 마감이라는 안내 문구가 보였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늦게까지 영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시간까지 술과 함께 피순대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아쉬운 부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피순대는 분명 매력적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먹었던 피순대는 냄새가 나거나 식감이 만족스럽지 못했던 적도 있었는데, 이 집은 잡내 없이 깔끔하고 쫄깃한 식감으로 제대로 된 피순대의 맛을 선사했다.
나중에 친구들과 함께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모듬순대에 순댓국까지 곁들여서 제대로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었지만, 역시 순대는 여럿이 모여서 이것저것 시켜놓고 푸짐하게 즐길 때 그 매력이 배가 되는 것 같다. 물론, 혼자서도 눈치 보지 않고 맛있는 피순대와 깔끔한 순댓국을 즐길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곳은 충분히 매력적인 동네 맛집이었다. 오늘도 혼밥 성공! 다음에 또 올 날을 기약하며 가게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