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를 짓누르던 배낭의 무게, 땀으로 축축했던 등, 쉴 새 없이 오르내리던 숨소리. 한라산 등반의 여운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은 맑았다. 이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며, 뜨끈한 국물과 든든한 밥으로 속을 채우고 싶어졌다. 인위적인 광고에 질려버린 나는 구글맵을 샅샅이 뒤져, 현지인들의 숨겨진 맛집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정갈한 집밥의 향기가 느껴지는 한 식당을 발견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니, 따뜻한 온기가 온몸을 감쌌다. 은은하게 풍기는 음식 냄새는 텅 비었던 속을 더욱 자극했다. 깔끔하게 정돈된 내부, 정갈하게 놓인 식기들이 왠지 모르게 믿음직스러웠다. 벽 한쪽에는 메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는데, 고사리 육개장과 몸국이라는 낯선 이름들이 눈에 띄었다. 제주에 왔으니, 향토 음식을 맛봐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고민 끝에 몸국을 주문하고, 고등어 반구이도 추가했다.

주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푸짐한 한 상이 차려졌다. 갓 지은 솥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고등어구이는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냈다. 뚝배기에 담긴 몸국은 진한 색깔만큼이나 깊은 향을 풍겼다. 계란후라이는 반숙으로 예쁘게 구워져 나왔고, 쌈 채소는 싱싱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마치 제주 할머니가 손수 차려준 듯한 정성 가득한 밥상이었다.
가장 먼저 솥밥의 뚜껑을 열었다. 스테인리스 솥 안에는 갓 지은 흰쌀밥이 담겨 있었는데, 밥알 사이사이로 노란 은행이 두 알 숨어 있었다. 밥을 그릇에 퍼 담고, 솥에 뜨거운 물을 부어 누룽지를 만들었다.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몸국은 처음 맛보는 음식이었다. 숟가락으로 휘저으니, 걸쭉한 국물 안에 해초와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 있었다. 한 입 맛보니, 깊고 진한 바다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돼지고기의 느끼함은 해초가 잡아주고, 해초의 짭짤함은 돼지고기가 중화시켜주는 듯했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딱 알맞은 간이었다.

고등어구이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젓가락으로 살을 발라 밥 위에 얹어 먹으니, 짭짤한 바다 내음이 입안 가득 퍼졌다. 쌈 채소에 밥과 고등어를 함께 싸 먹으니, 신선한 채소의 향긋함이 더해져 더욱 풍성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등반으로 지쳐있던 몸에 활력이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계란후라이는 반숙이라 노른자가 촉촉하게 흘러내렸다. 밥에 비벼 김치와 함께 먹으니, 고소함과 매콤함이 어우러져 잃어버렸던 입맛을 되찾아주는 듯했다. 밑반찬 하나하나에도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다. 특히, 짭짤하게 볶아진 멸치볶음은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솥에 남은 누룽지를 먹었다. 뜨끈하고 구수한 누룽지는 속을 편안하게 달래주었다. 누룽지를 먹으니, 어린 시절 할머니가 끓여주셨던 누룽지탕이 떠올랐다. 따뜻한 추억에 잠겨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계산을 하려고 보니, 점심시간에는 가게 앞에 주차를 해도 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친절한 사장님은 “맛있게 드셨냐”며 환하게 웃으셨다. 기분 좋게 “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답했다.

식당을 나서며, 든든하게 채워진 배만큼이나 마음도 따뜻해짐을 느꼈다. 화려한 관광지 맛집도 좋지만, 가끔은 소박하고 정갈한 현지인 맛집에서 진짜 제주의 맛을 느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다음에 제주에 온다면, 꼭 다시 방문하고 싶다. 그때는 고사리 육개장도 맛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