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 뇌는 이미 ‘저녁 메뉴 결정 알고리즘’을 가동하기 시작한다. 삼겹살의 지방, 목살의 단백질, 찌개의 감칠맛… 신경세포들은 이미 최적의 조합을 찾아 헤매고 있다. 오늘 나의 실험실, 아니, 저녁 식사 장소로 낙점된 곳은 은평구 역촌역 인근의 맛집, ‘동래정’이다. 돼지고기, 그중에서도 숙성된 풍미가 일품이라는 목살과 가브리살을 정밀 분석해 볼 예정이다.
연구자의 숙명은 꼼꼼한 사전 조사. 방문자들의 리뷰 데이터를 수집, 분석한 결과, ‘음식이 맛있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물론, ‘고기 질이 좋다’, ‘친절하다’ 등의 긍정적인 반응도 다수 확인되었다. 하지만 과학적 탐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검증’. 직접 가서 맛보고,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콜키지 프리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퇴근 후 곧장 역촌역으로 향했다. 지하철 2번 출구에서 나와 300m 정도 직진하니, 하나은행 사거리 근처에서 ‘동래정’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모던한 외관이 인상적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후각 수용체를 자극하는 숯불 향이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실험, 아니 식사 준비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자리에 앉자, 직원분이 메뉴판을 가져다주셨다. 역시, 대표 메뉴는 ‘동래목살’과 ‘정가브리살’. 망설일 필요 없이 둘 다 주문했다. 추가로, 입 안을 깔끔하게 정리해 줄 ‘비빔밀면’도 함께 주문했다. 돼지고기의 지방 성분은 고소하지만, 과유불급. 밀면의 매콤함이 완벽한 균형을 맞춰줄 것이다.

주문 후, 테이블에는 빠르게 밑반찬들이 세팅되었다. 깻잎 장아찌, 백김치, 쌈무 등 고기와 곁들여 먹기 좋은 구성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멜조림’. 멸치젓을 졸여 만든 이 소스는, 돼지고기의 풍미를 한층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멜라닌 색소를 다량 함유하여 시각적으로도 식욕을 자극한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동래목살’이 등장했다. 겉으로 보기에도 선홍색의 육질과 하얀 지방의 조화가 예술이다. 마블링, 즉 근내지방은 소고기뿐만 아니라 돼지고기에서도 중요한 풍미 결정 요소다. 이 지방들이 녹아내리면서 고기의 맛과 향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숯불이 들어오고, 직원분이 능숙한 솜씨로 목살을 불판 위에 올려주셨다. “저온 숙성을 거친 고기라 육즙이 풍부할 겁니다” 라는 설명과 함께. 약 160도에서 시작되는 마이야르 반응. 아미노산과 환원당이 반응하여 수백 가지의 향기 화합물을 생성, 복합적인 풍미를 만들어낸다. 시각, 후각, 미각을 자극하는 향연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고기가 익어가는 동안, 불판 한 켠에는 작은 뚝배기에 담긴 기름과 마늘, 그리고 꽈리고추가 함께 구워졌다. 마늘의 알리신 성분은 항균 작용을 하며, 꽈리고추의 캡사이신은 미각 신경을 자극하여 식욕을 돋운다. 과학적으로 설계된 완벽한 조합이다.
직원분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고기를 뒤집고, 자르고, 구워주셨다. 덕분에 나는 오롯이 맛에 집중할 수 있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이상적인 상태로 구워진 목살 한 점을 멜조림에 살짝 찍어 입에 넣었다.
…놀라운 맛이다. 돼지 특유의 잡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풍부한 육즙과 고소한 지방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멜조림의 짭짤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은, 목살의 풍미를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혀의 미뢰 세포들이 환호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번에는 깻잎 장아찌에 싸서 먹어봤다. 깻잎의 향긋함이 돼지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주면서, 또 다른 차원의 풍미를 선사했다. 깻잎에 함유된 페릴알데히드 성분은, 돼지고기의 지방 성분과 반응하여 더욱 복합적인 향을 만들어낸다.

‘정가브리살’ 역시 훌륭했다. 목살보다 지방 함량이 적어 더욱 담백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가브리살은 돼지 한 마리당 극소량만 나오는 부위로, 그 희소성만큼이나 뛰어난 맛을 자랑한다.
고기를 어느 정도 먹고 나니, 타이밍 좋게 ‘비빔밀면’이 나왔다. 매콤한 양념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젓가락으로 면을 휘저어 한 입 맛보니, 입안이 순식간에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밀면의 글루텐 성분은 쫄깃한 식감을 담당하며, 고추장의 캡사이신은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하여 쾌감을 선사한다.
비빔밀면과 돼지고기의 조합은, 그야말로 ‘환상의 짝꿍’이다. 돼지고기의 기름진 맛을 밀면의 매콤함이 깔끔하게 잡아주면서, 끊임없이 먹을 수 있게 만든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루프에 빠진 듯한 기분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온몸의 세포들이 만족감으로 가득 찬 듯한 느낌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단순한 ‘식사’ 행위를 넘어선다. 뇌의 도파민 회로를 활성화시키고,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정신적인 보상’인 것이다.
‘동래정’에서의 식사는, 성공적인 ‘미식 실험’이었다. 신선한 재료, 과학적인 조리법, 그리고 친절한 서비스까지. 모든 요소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훌륭한 맛을 만들어냈다. 은평구에서 돼지고기를 먹고 싶을 때, 주저 없이 ‘동래정’을 선택할 것이다.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서면서, 직원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덕분에 맛있는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다음에 또 방문하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뇌는 이미 다음 ‘미식 실험’을 계획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아직 탐구해야 할 맛들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나는, 맛의 과학을 탐구하는 연구자로서, 끊임없이 새로운 맛을 찾아 나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