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7-1코스를 걷던 날, 짙푸른 바다와 현무암의 조화로운 풍경에 흠뻑 취해 발걸음을 옮겼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마침 배꼽시계가 요란하게 울려 퍼질 때쯤, 멀리서 정겨운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청보리’. 왠지 모르게 푸근한 느낌이 감돌아 이끌리듯 발길을 향했다.
식당 앞에 다다르니,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싱그러운 녹음이 드리워진 풍경은 마치 오랜 세월 그 자리에 터를 잡고 살아온 듯한 인상을 풍겼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밝은 공간이 펼쳐졌다.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 놓으니,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와 야외에서 식사하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벽에 붙은 메뉴판에는 단출하게 ‘쌈밥정식 11,0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메뉴 선택의 고민 없이 쌈밥정식 2인분을 주문했다. 잠시 후, 상상 이상의 풍성한 반찬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20여 가지는 족히 넘어 보이는 다채로운 반찬들은 마치 한정식 상차림을 연상케 했다.

고등어구이의 고소한 냄새, 강된장의 깊은 향, 돼지불고기의 달콤한 향이 코를 자극했다. 젓가락을 어디에 먼저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밥은 쌀밥과 보리밥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나는 톡톡 터지는 식감이 매력적인 보리밥을 선택했다.
본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하기 전, 테이블 한 켠에 마련된 쌈 채소 코너로 향했다. 싱싱한 쌈 채소들이 푸짐하게 준비되어 있었는데,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입맛을 돋웠다. 넉넉한 인심에 감동하며, 좋아하는 쌈 채소들을 한가득 담아 자리로 돌아왔다.
가장 먼저 고등어구이 한 점을 맛보았다.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져 나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완벽한 조화였다. 강된장은 짭짤하면서도 깊은 맛이 일품이었다. 쌈 채소에 보리밥과 강된장을 듬뿍 넣어 크게 한 쌈 싸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돼지불고기는 부드러운 식감과 달콤한 양념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다만, 비계 부분이 조금 많아 아쉬움이 남았다.
반찬 하나하나 정성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간이 세지 않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고, 집밥처럼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20년 넘게 제주에 살면서 수많은 식당을 가봤지만, 손에 꼽을 정도로 기억에 남는 곳이라고 극찬하는 이웃 주민의 평가가 과장이 아니었다.

식사를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식당 안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곳이라고 들었는데,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특히, 혼자 식사하러 온 손님들도 눈에 띄었는데, 그만큼 편안하고 부담 없는 분위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빙해 주시는 분들도 친절해서 기분 좋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부족한 반찬은 셀프로 리필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가져다 먹을 수 있었다. 쌈 채소 역시 신선하게 유지되어 있어 만족스러웠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니, 1인당 11,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다시 한번 놀랐다. 이렇게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을 이 가격에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가성비 최고라는 칭찬이 아깝지 않았다.
식당 한켠에는 커피 믹스를 마실 수 있도록 간이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식당 앞 테이블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따뜻한 햇살 아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커피를 마시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 든든하게 채워진 배만큼이나 마음도 따뜻해짐을 느꼈다. 청보리는 단순한 식당이 아닌, 푸근한 인심과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올레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이 곳은, 앞으로 제주를 방문할 때마다 꼭 다시 찾고 싶은 서귀포 맛집으로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다음에는 닭볶음탕도 꼭 먹어봐야지 다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여행 팁: 청보리는 점심 장사만 하며, 오후 3시까지 영업하지만 재료가 소진되면 조기 마감될 수 있으니, 늦게 방문할 경우 미리 전화해 보는 것이 좋다. 특히, 보리밥은 인기가 많아 빨리 품절될 수 있으니, 서둘러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외국인 친구와 함께 방문한다면,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한국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