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따스함이 차오르는 식사를 했다. 목동, 그곳에서 80년대 함바집으로 시작해 2대째 이어져오는 노포, 개성집. 88올림픽의 열기가 채 가시기 전, 아파트 단지조차 서지 않았던 시절부터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곳이라니, 그 깊이에 대한 기대감을 감출 수 없었다. 곰달래길 언덕 옆,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외관이 정겹다. ‘리얼코리아’라는 오래된 문구가 적힌 간판은 이 집의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목동 사거리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네네치킨 건물 지하 1층에 자리 잡은 개성집. 독특하게도 언덕에 위치한 덕분에 입구가 두 군데다. 한쪽에서는 1층이지만, 다른 쪽에서는 계단을 내려가야 비로소 식당의 문이 보인다.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한 기분으로 지하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홀은 생각보다 넓고 테이블 좌석과 신발을 벗고 앉는 좌식 공간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토요일 오후 6시, 아직 저녁 시간 전이라 홀은 비교적 한산했다. 하지만 7시가 넘어가자 혼밥을 즐기는 손님부터 가족, 연인, 그리고 모임으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벽에는 메뉴판이 걸려 있었는데, 만두국이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뒤로 찐만두, 소머리국밥, 보쌈, 빈대떡이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마치 이 집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놓은 듯한 메뉴 구성이었다.
자리에 앉자 따뜻한 결명자차가 나왔다. 은은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물을 잘 마시지 않는 아내도 결명자차는 홀짝홀짝 잘 마시는 모습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메뉴판을 정독한 끝에, 우리는 만두국과 보쌈(小)을 주문하기로 했다. 특히 만두국은 이 집의 대표 메뉴라고 하니, 그 맛이 더욱 궁금해졌다.
잠시 후, 주문한 보쌈이 먼저 나왔다. 접시에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밝은 톤의 보쌈 고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화려한 비주얼은 아니었지만, 깔끔하고 정갈한 모습에서 개성집만의 개성이 느껴졌다. 기름기는 적고 잡내는 전혀 나지 않는 쫀쫀한 식감의 고기는,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돼지 잡내는 기본적으로 없고, 한 입 넣으면 입에서 흩어질 정도로 야들야들 부드럽다는 후기처럼, 정말 근래 먹어본 보쌈 중에 최고였다. 사장님이 얼마나 정성 들여 삶으셨을지 느껴지는 맛이었다.

보쌈을 주문하면 보쌈김치를 따로 내어주는데, 기본 찬으로 나오는 잘게 썰은 김치와 함께 두 가지 김치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겉절이랑도 너무 잘 어울렸다. 김치 맛은, 솔직히 둔감한 혀로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말이다.
곧이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만두국이 나왔다. 특이하게도, 우리 부부와 혼자 온 손님에게 각각 다른 수의 만두가 담긴 그릇이 나왔다. 혼자 온 손님에게는 만두 두 알이, 우리 부부에게는 세 알이 담긴 그릇이 제공되었다. 만두국은 겉모습부터가 심플했다. 뽀얀 국물에 큼지막한 만두가 덩그러니 떠 있는 모습은, 마치 정갈한 수묵화를 보는 듯했다. 국물을 한 입 맛보니, 조미료 맛이 강하지 않고 간이 가벼우면서도 깨끗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슴슴할 수는 있어도 맛은 끝내준다는 후기가 과장이 아니었다. 멸치와 돼지를 같이 넣어 끓였다는 국물은 처음엔 약간의 이질감도 느껴졌지만, 큼지막한 만두를 맛보는 순간 그런 생각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만두소는 애호박, 부추, 마늘, 표고 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재료를 너무 잘게 갈지 않아, 씹을 때마다 재료 본연의 식감이 살아있었다. 특히 초록색의 호박과 부추가 넉넉하게 박혀있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부드러운 고기의 씹는 맛 뒤로 호박, 부추의 질감이 느껴지는 만두는 맑고 촉촉했다. 만두피는 두꺼웠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수제비처럼 쫀득한 식감이 묘하게 중독적이었다.

“오, 만두 맛있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아내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냉동만두 파는데 사갈래?”
사실 나는 만두를 즐겨 먹는 편도 아니고, 식당에서 파는 음식을 집으로 사 가는 경우도 별로 없다. 하지만 이 만두는 왠지 모르게 자꾸 생각날 것 같았다. 결국 식사를 마치고 냉동만두 10알을 포장했다. 만두는 조리되지 않은 상태로도 구매가 가능하다고 한다.
개성집은 1934년생인 창업주 이유순 할머니에 이어 먼 친척인 현 대표가 2대째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창업주의 고향은 황해도 평산이고 외가는 개성이라고 하니, 이 집의 음식은 개성 지방의 맛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셈이다. 2009년 동아일보 기사에서 창업주는 주방에서 가장 아끼는 것으로 ‘손수 담근 간장’이라고 답하며, ‘이 간장을 쓰지 않으면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힘들어 간장 못 담게 되면 장사 그만해야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음식에 대한 고집과 정성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새 홀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개성집은 단순한 식당이 아닌, 사람들의 추억과 이야기가 함께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따뜻한 만두국 국물과 쫄깃한 보쌈의 식감이 자꾸만 떠올랐다. 다음에는 소머리국밥과 빈대떡도 꼭 먹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목동에서 맛집을 찾는다면, 세월의 손맛이 깃든 개성집에서 따뜻한 한 끼 식사를 즐겨보는 것을 추천한다. 슴슴하지만 깊은 맛, 그리고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한 만두! 김치맛은 글쎄라는 평도 있지만, 내 입맛에는 모든 것이 완벽한 식사였다.
덧붙여, 개성집은 주차가 다소 불편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목 사거리 쪽에서 오다 보면 내리막 끝에 위치한 네네치킨 건물에 주차 공간이 있긴 하지만,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뒷골목이나 점심시간 노상 주차를 이용해야 한다.
개성집, 그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닌, 목동의 역사와 추억이 담긴 공간이었다. 따뜻한 만두국 한 그릇에 담긴 정성과 세월의 깊이를 느끼며, 나는 다시 한번 이곳을 찾을 것을 약속했다.

총평: 슴슴하지만 깊은 맛, 푸짐한 인심, 그리고 친절한 서비스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목동의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이다. 특히 만두국은 꼭 맛봐야 할 메뉴이며, 보쌈 역시 훌륭하다. 다음에는 소머리국밥과 빈대떡에도 도전해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