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동, 그 이름만 들어도 어딘가 시간의 더께가 느껴지는 동네. 그곳에 1999년부터 묵묵히 김치 외길을 걸어온 노포, 다람이 자리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김치, 그 단순한 발효 음식이 서울 맛집 반열에 오를 정도라니, 연구원으로서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넷플릭스 ‘맛의 나라’에 소개될 정도라니, 이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파헤쳐 볼 가치가 충분한 ‘미식 실험’의 대상이었다.
결전의 날, 둔촌동역 3번 출구를 나섰다. 다람은 마치 미지의 연구실로 향하는 듯한 설렘을 안겨주는 곳이었다. 푸른색 외관이 인상적인 매장 앞에 서니,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쌓아온 김치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듯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깔끔하게 리모델링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노포의 정취와 현대적인 세련미가 공존하는 분위기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스캔했다. 돼지고기는 당연히 곁들여야 할 실험 재료일 뿐, 오늘 나의 주된 관심사는 오로지 ‘김치’였다. 모듬 3종 김치를 시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잠시 후,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김치. 묵은지, 대파김치, 갓김치, 오이소박이, 무김치… 형형색색의 김치들이 마치 잘 정돈된 실험 도구처럼 눈 앞에 펼쳐졌다.

가장 먼저 묵은지에 시선이 꽂혔다. 3년 이상 숙성된 묵은지는 그야말로 발효의 정수였다. 젓산균이 만들어낸 깊은 풍미는 마치 잘 숙성된 와인처럼 복잡미묘했다. 돼지고기 수육 한 점을 묵은지에 감싸 입 안으로 가져갔다. 콜라겐과 엘라스틴으로 이루어진 돼지 껍데기의 쫀득함과 묵은지의 아삭함이 대비를 이루며 훌륭한 식감을 선사했다. 묵은지의 젖산은 돼지고기의 단백질과 반응하여 감칠맛을 더욱 증폭시키는 효과를 냈다.
다음 타자는 대파김치였다. 3년 묵혔다는 대파김치는 예상대로 강렬한 풍미를 자랑했다. 알리신 함량이 높은 대파는 숙성 과정에서 알싸한 맛은 줄어들고 단맛과 감칠맛이 응축된다. 혀를 톡 쏘는 듯한 알싸함 뒤에 숨겨진 은은한 단맛은, 마치 노련한 조련사처럼 미각을 사로잡았다.
갓김치는 또 다른 차원의 풍미를 선사했다. 갓 특유의 쌉쌀한 맛은 발효를 거치면서 더욱 깊어지고, 톡 쏘는 듯한 매운맛은 입 안을 개운하게 정화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갓에 함유된 시니그린은 소화 효소 분비를 촉진하여 돼지고기의 소화를 돕는 효과도 있다. 과학적으로 완벽한 궁합인 셈이다.
오이소박이는 신선함 그 자체였다. 갓 양념에 버무려진 오이는 아삭한 식감을 자랑하며 입 안 가득 퍼지는 시원한 향은, 마치 여름날 소나기처럼 상쾌했다. 오이에 함유된 쿠쿠르비타신은 쌉쌀한 맛을 내지만, 발효 과정에서 젖산균에 의해 분해되어 단맛으로 변환된다.
마지막으로 맛본 무김치는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했다. 큼지막하게 썰어 낸 무는 아삭한 식감을 넘어, 마치 단단한 얼음을 깨무는 듯한 청량감마저 선사했다. 무에 함유된 아밀라아제는 탄수화물 분해를 돕고, 글루코시놀레이트는 항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맛과 건강,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돼지고기 역시 훌륭했다. 160도에서 마이야르 반응이 활발하게 일어난 고기 표면은 갈색 크러스트를 형성하며,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고소한 풍미를 극대화했다. 돼지 지방이 녹아내리면서 만들어내는 풍부한 향은 후각을 자극하고, 입 안에서는 육즙이 터져 나오며 미각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곳에서는 고사리와 가지를 함께 구워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수분을 가득 머금은 가지는 돼지 지방을 흡수하여 풍미를 더욱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김치와 돼지고기의 조합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김치의 젖산과 돼지고기의 단백질은 서로 반응하여 감칠맛을 증폭시키고, 김치의 매운맛은 돼지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주어 끝없이 먹을 수 있게 만드는 마법을 부렸다. 마치 잘 조율된 오케스트라처럼, 각자의 개성을 뽐내면서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맛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놓칠 수 없는 메뉴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홍게된장국수였다. 된장 베이스의 국물에 홍게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비주얼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된장의 구수한 맛과 홍게의 시원한 맛이 어우러진 국물은, 마치 깊은 바다를 품은 듯한 풍미를 자랑했다. 면발은 쫄깃했고, 홍게 살은 부드러웠다. 다만 홍게에서 우러나오는 풍미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은 다소 아쉬웠다. 다음 방문 때는 곤드레 솥밥에 도전해봐야겠다.

다람에서의 식사는 단순한 식사를 넘어, 마치 과학 실험과 같은 경험이었다. 김치라는 발효 음식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과, 30년 장인의 손길이 만들어낸 깊은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다양한 김치를 맛보며 느꼈던 미묘한 차이들은, 마치 과학자가 새로운 물질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희열과도 같았다.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서려는데, 주인 할머니께서 말을 걸어오셨다. 김치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가득 담긴 할머니의 미소는, 마치 연구 결과 발표를 성공적으로 마친 과학자의 뿌듯함처럼 느껴졌다. 할머니는 김치를 직접 담그고 관리하는 모습에서 장인의 포스가 느껴졌다. 다음에 방문할 때는 꼭 김치 담그는 비법을 여쭤봐야겠다.
다람, 이곳은 단순한 고깃집이 아닌, 김치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열정이 만들어낸 ‘김치 과학 연구소’와 같은 곳이었다. 둔촌동이라는 다소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다시 방문할 이유는 충분했다. 다음에는 또 어떤 새로운 김치 실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실험 결과, 이 집 김치는 완벽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