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옷깃을 스미는 날이었다. 평양냉면이 본디 겨울 음식이라지만, 나는 유독 추위를 타는 터라 망설임이 앞섰다. 하지만 발길은 이미 구의동을 향하고 있었다. 1968년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노포, 서북면옥의 평양냉면은 어떤 맛일까. 낡은 간판에서 풍겨져 나오는 세월의 흔적은 묘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해장으로 시원한 냉면 국물이 간절했던 것도 사실이다.
초저녁 시간임에도 가게 안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밖의 매서운 바람이 무색할 만큼,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테이블 간 간격은 좁았지만, 그마저도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정 때문일까. 메뉴판을 보니, 요즘 평양냉면 가격을 생각하면 상당히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물냉면 한 그릇과 함께, 혼자서는 맛보기 힘들다는 편육 반 접시를 용기 내어 주문했다.

테이블 한 켠에는 김치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옅은 양념에 시큼하면서도 쨍한 맛이 느껴지는 김치는 직접 잘라 먹어야 했다. 겉절이처럼 풋풋한 맛은 아니었지만, 묘하게 끌리는 매력이 있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편안하면서도 익숙한 맛이었다. 김치를 자르는 가위 소리가 정겹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드디어 편육이 먼저 나왔다.
편육은 겉이 검게 바랜 껍데기에서 은은한 한방 향이 느껴졌다. 삶을 때 뭔가 특별한 비법이 들어간 듯했다. 겉은 살짝 말라 있었지만, 껍데기는 쫀득한 식감을 자랑했다. 마치 잘 구워진 차슈처럼,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아주 차가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냉면과 함께 곁들여 먹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함께 나온 무생채는 김치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보쌈 무처럼 달콤한 맛이, 입안을 산뜻하게 정돈해 주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평양냉면이 나왔다. 놋그릇에 담긴 냉면은 보기만 해도 시원함이 느껴졌다. 뽀얀 육수 위로 가지런히 놓인 고명은 단아한 자태를 뽐냈다. 나는Bowl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단숨에 국물부터 들이켰다. 동치미를 베이스로 한 육수는 짭짤하면서도 깊은 맛을 냈다. 슴슴한 평양냉면을 기대했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광명 정인면옥과 비슷한 느낌이면서도, 육향은 덜했다. 오히려 물 막국수에 가까운 인상이었다. 면은 메밀 순면은 아니었지만, 적당한 메밀 향과 함께 탄력 있는 식감을 자랑했다. 면발을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은은한 메밀 향은,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툭툭 끊어지는 듯하면서도 쫄깃한 면발은,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고명으로 올라간 아롱사태 수육은 또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큼지막한 수육 한 점은, 겉은 매끈하면서도 속은 결이 살아 있었다. 부드러운 듯 쫄깃한 식감은, 묘한 대비를 이루며 입안을 즐겁게 했다. 마치 섬세하게 조각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면과 고명을 함께 집어 입안으로 가져갔다. 짭짤한 육수와 메밀면, 그리고 아롱사태 수육의 조화는 완벽했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협주곡처럼, 각 재료의 맛이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냈다. 나는 눈을 감고 그 맛을 음미했다. 차가운 냉면의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듯했다.
어느새 냉면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놋그릇 바닥이 드러나자, 아쉬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입안에 남은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짭짤하면서도 시원한 육수, 쫄깃한 면발, 그리고 부드러운 수육의 조화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계산을 하고 가게 문을 나섰다. 여전히 바람은 차가웠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은 따뜻해졌다. 성공적인 평양냉면 한 그릇은, 추위마저 잊게 할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서북면옥은 서울의 여느 평양냉면 명가와는 조금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육향이 강렬하지는 않지만, 슴슴함 속에 숨겨진 깊은 맛이 있었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편안하게 다가오는 매력이었다. 가격 또한 합리적이어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가게 내부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소박한 분위기였다. 테이블 간 간격은 좁았지만, 그마저도 정겹게 느껴졌다. 벽에는 손님들의 낙서와 사장님의 사진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느낌이었다.

천장에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낡은 조명이 달려 있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조명 아래, 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평화롭고 따뜻한 분위기였다.
서북면옥은 평양냉면 초보자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슴슴한 듯하면서도 깊은 맛은,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특히 짭짤한 육수는, 평양냉면 입문자들에게 좋은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봉피양 스타일의 육향 진한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가성비 좋은 평양냉면을 찾는다면 분명 만족할 것이다.
만두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메뉴다. 특히 접시만두는 두부의 함량이 높아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만두는, 슴슴한 평양냉면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만두피는 살짝 두꺼운 편이지만, 쫄깃한 식감이 매력적이다. 만두소는 두부와 고기, 채소가 어우러져 풍성한 맛을 낸다.

서북면옥에서는 특이하게 소주를 병이 아닌, 도자기 컵에 두 잔으로 나누어 준다. 마치 술을 즐기기보다는 가볍게 반주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처럼 느껴졌다. 맥주 역시 마찬가지로, 유리병이 보이지 않도록 플라스틱 잔에 따라 준다고 한다. 독특한 운영 방식이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곳은 브레이크 타임이 없어 언제든 방문하기 좋다. 혼밥 손님도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혼자 오는 손님에게는 편육 반 접시를 판매한다.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지만, 그만큼 음식에 정성을 쏟는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서북면옥은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는 맛을 지켜오고 있다.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평양냉면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이다. 평양냉면을 좋아한다면, 꼭 한 번 방문해 보기를 추천한다.

최근에는 가격이 인상되어, 평양냉면 한 그릇에 12,000원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평양냉면집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게다가 고명으로 얹어주는 고기의 퀄리티는 상당히 훌륭하다. 육수의 간은 다른 곳보다 센 편이지만, 평양냉면 초심자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김치는 짜지 않고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특히 갓 담근 김치처럼 신선한 느낌이 좋았다. 무 또한 아삭아삭하고 간이 딱 맞았다. 김치와 무는, 냉면의 맛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다. 가게 내부는 협소한 편이라, 식사 시간에는 웨이팅이 필수다. 특히 주차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주변 공원 주차장을 이용하면,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다.
서북면옥은 평양냉면의 숨겨진 지역 맛집이라고 불릴 만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언제 찾아도 변함없는 맛으로 나를 반겨주는 곳이다. 나는 서북면옥의 평양냉면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아, 그 맛을 음미할 것이다.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서북면옥의 추억을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