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래 묵혀둔 그리움을 따라 정읍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내장산의 푸르름도, 백양사의 고즈넉함도 아닌, 오직 한 곳, ‘가을빛묵은지’였다. 이름에서부터 깊은 맛이 느껴지는 이곳은 3년 묵은 묵은지의 깊은 맛으로 입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평소 김치 없이는 밥을 못 먹는 나에게 묵은지 맛집은 그 어떤 여행지보다 설레는 곳이다.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늦가을의 길목, 백양사로 향하는 길가에 자리 잡은 ‘가을빛묵은지’는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분위기를 풍겼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따뜻한 온기가 온몸을 감싸는 듯했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묵은지 특유의 깊은 발효 향은 뱃속에서부터 꼬르륵 요동치게 만들었다.

메뉴판을 펼쳐 들었다. 묵은지 김치찜, 산채비빔밥, 파전 등 하나하나 놓치기 아쉬운 메뉴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고민 끝에 묵은지 김치찜과 파전을 주문했다. 특히 묵은지 김치찜은 이곳의 대표 메뉴로, 3년 묵은 묵은지의 깊은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하니 기대감이 컸다.
주문을 마치자, 정갈하게 담긴 밑반찬들이 하나 둘 테이블 위를 채워나갔다. 형형색색의 나물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묵은지, 쌉쌀한 삼채 장아찌까지, 보기만 해도 입맛이 확 돌았다. 사장님의 정성이 느껴지는 소담한 반찬들은 하나같이 신선하고 맛깔스러웠다. 특히 직접 재배하신 채소들로 만들었다는 밑반찬은 그 신선함이 남달랐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묵은지 김치찜이 모습을 드러냈다. 묵직한 뚝배기 안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김치찜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묵은지의 깊은 향과 돼지고기의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며 식욕을 더욱 돋우었다. 김치찜 위에는 하얀 두부와 신선한 대파가 얹어져 있어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을 완성했다.

젓가락으로 묵은지를 쭉 찢어 하얀 쌀밥 위에 얹어 한 입 가득 넣었다. 3년 묵은 묵은지의 깊고 풍부한 맛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적당히 잘 익은 묵은지는 아삭아삭한 식감까지 살아있어 먹는 재미를 더했다. 묵은지 특유의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은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김치찜 안에는 큼지막한 돼지고기 덩어리도 아낌없이 들어 있었다. 부드럽게 잘 익은 돼지고기는 묵은지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돼지고기의 기름진 맛은 묵은지의 새콤한 맛과 어우러져 느끼함 없이 담백하게 즐길 수 있었다. 묵은지와 돼지고기를 함께 먹으니, 마치 어릴 적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김치찌개의 맛이 떠오르는 듯했다.
이번에는 파전을 맛볼 차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파전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파 특유의 향긋한 향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고, 쫄깃한 오징어와 새우가 씹는 재미를 더했다. 특히 이곳만의 비법 삼채장에 찍어 먹으니, 파전의 맛이 한층 더 깊어지는 듯했다. 삼채의 쌉쌀한 맛이 파전의 느끼함을 잡아주어 끊임없이 젓가락이 향하게 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사장님은 따뜻한 미소로 부족한 반찬은 없는지, 맛은 괜찮은지 세심하게 챙겨주셨다. 마치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손주를 맞이하는 할머니처럼 푸근하고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사장님의 친절함 덕분에 더욱 기분 좋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서려는데, 사장님께서 직접 만드셨다는 도라지정과를 맛보라고 건네주셨다. 쌉쌀하면서도 달콤한 도라지정과는 입안을 깔끔하게 마무리해주는 완벽한 디저트였다.
‘가을빛묵은지’에서의 식사는 단순한 한 끼 식사를 넘어, 따뜻한 고향의 정과 깊은 손맛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3년 묵은 묵은지의 깊은 맛은 물론, 사장님의 친절함과 정성 가득한 밑반찬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곳이었다. 정읍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꼭 다시 들르고 싶은 인생 맛집으로 내 마음속에 저장했다.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가을 풍경은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가을빛묵은지’에서 맛본 묵은지의 깊은 맛과 따뜻한 정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다음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꼭 다시 방문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정읍 맛집 “가을빛묵은지” 와의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